'자산 매각했는데 투자는…' SK그룹 '재조정'에 우려 목소리 나오는 까닭

2025-01-03

[비즈한국] SK그룹의 리밸런싱(자산 재조정) 작업에 재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경쟁력 있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인공지능(AI)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AI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장은 적극적인 투자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최근 경기 악화와 정치적 불확실성 등 불안 요소가 산적했기 때문이다.

#다수 자산 매각해 재무 개선

SK그룹은 2024년 한 해 동안 다수의 자산을 매각했다. SK렌터카, SK매직 가전사업, 어센드엘리먼츠, 원커머스 등이다. 최근에는 우티와 SK스페셜티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SK그룹이 자산을 매각함에 따라 미래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SK그룹은 중복 사업 위주로 정리했고,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SK그룹은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성공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SK그룹의 지주회사 SK(주)의 부채비율은 2023년 9월 말 165.76%에서 2024년 9월 말 156.19%로 1년 새 9.57%포인트(p) 감소했다. 그럼에도 증권가에서는 SK그룹의 리밸런싱이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주력 계열사나 비핵심 자산·사업 부문 매각 후에도 자원의 재배치와 역량의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온전히 갖추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SK그룹의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가 리밸런싱 성공 여부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SK그룹은 최근 투자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향후 적극적인 투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SK(주)는 그간 첨단소재, 그린, 바이오, 디지털 등을 4대 미래 핵심 사업으로 삼고 부문별로 투자센터를 운영했으나 올해부터 투자 기능을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PM)’ 부문으로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미래 성장 사업 발굴을 위해 ‘인공지능(AI) 혁신’과 ‘성장 지원’ 두 개 조직을 신설했다.

SK그룹은 지난해 SK스페셜티 매각을 발표하면서 AI와 에너지 솔루션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AI는 최태원 회장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도 “AI 산업의 급성장에 따른 글로벌 산업구조와 시장의 재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밝혔다. SK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2026년까지 80조 원의 재원을 확보하고, AI와 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 투자와 주주환원 등에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AI 집중, 괜찮을까

AI 분야는 다수의 IT 기업이 관련 사업에 진출한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SK그룹의 AI 사업은 SK텔레콤이 주도한다. SK텔레콤은 AI 데이터센터, AI B2B, AI B2C 세 분야로 나눠 AI 사업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데이터센터와 B2B 분야의 클라우드 사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클라우드 사업의 경우 LG, KT, 카카오, 네이버 등 다수 기업이 진출한 상태다. SK텔레콤의 AI B2C 서비스 ‘에이닷’는 LG유플러스의 ‘익시오’와 경쟁을 펼치고 있다. KT도 유사한 서비스 출시를 검토 중이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도 주목 받는 제품이다. HBM은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으로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시스템 반도체에 제공한다. 문제는 글로벌 AI 제품 제조사들이 최근 가격 문제로 HBM 대체 제품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추론용 AI 가속기 ‘마하-1’이 HBM 대신 저전력 D램을 탑재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 미래포럼에서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가속화하면서 미래가 명확해지고 예측 가능해질 줄 알았는데 훨씬 모호하고 예측이 어려워졌다”고 언급했다.

AI의 수익모델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SK그룹의 AI 사업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셈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AI의 자동화 및 인력 대체 효과에 관해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AI는 혁신확산이론 관점에서 얼리어답터 단계로 보인다. 성장은 하지만 수익이 나기 어려우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이 투자하겠다고 밝힌 또 다른 사업인 에너지솔루션 분야는 SK E&S가 주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SK E&S를 흡수합병했다. 이후 SK E&S는 SK이노베이션 내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운영 중이다. SK E&S는 현재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가상발전소(VPP)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변수는 불안정한 외부 환경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SK그룹이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IB 업계 관계자는 “추측이긴 하지만 SK그룹이 그간 M&A로 성장한 그룹인 만큼 미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M&A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연구개발(R&D)도 중요하지만 단기간에 연구 성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M&A가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수는 외부 환경이다. SK그룹이 대대적인 투자나 M&A에 나서기에는 외부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 우선 경기가 좋지 않아 거액의 지출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비상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과 같은 기조에서는 SK그룹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보수적으로 변할 것”이라며 “불확실성에 대응할 체력을 비축하는 데 ​최대한 ​많은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SK그룹의 재무가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실적은 하락세다. SK(주)의 매출은 2023년 1~3분기 96조 5812억 원에서 2024년 1~3분기 94조 4599억 원으로 2.20%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조 4874억 원에서 2조 7636억 원으로 38.41% 줄었다. 실적 하락이 지속되면 그만큼 현금 유입이 줄어들어 투자 계획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준기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SK(주)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계획, 자기주식 매입 및 배당성향 확대 등 주주환원정책 강화에 따른 높은 자금 소요가 지속될 것”이라며 “지주사로서의 자체 재무부담이 크지 않은 수준이나 신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등에 따른 투자 확대기조 및 차입금 변동 수준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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