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 인프라 자원순환 중요성
우리나라 통신 인프라 투자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고속 인터넷은 세계 최초, 최고의 속도를 자랑했으며, LTE는 시작이 조금 늦었던 반면 가장 빠른 보급률을 기록했다. 5G도 미국보다 2시간 먼저 상용화를 선언하며 모든 산업계가 2002 월드컵의 긴장과 짜릿함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처럼 빠른 신기술 인프라 구축은 제품 수명이 다할 경우 철거돼야 하는 폐기물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된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이 관리하는 국내 무선국 데이터에 따르면 매년 14만개의 기지국이 신축되고, 8만7000국이 폐국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3G 서비스 종료와 15년 이상 사용한 LTE 장비 교체주기가 동시에 도래하는 향후 수년간은 사용후 장비가 급증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운영중인 3G 기지국 28만국과 LTE 기지국 108만국이 대·개체 대상이다. 이러한 기지국 장비 교체는 5G 전국망 시대에는 LTE의 2~4배가 된다. 6G 시대에는 더 많아진다.
또 생성형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디지털트윈 등 새로운 서비스들은 데이터센터 투자를 가속화 한다. 챗GPT는 동일한 질문과 댓글을 보내는데 일반적인 구글 검색 대비 10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고성능 서버와 스토리지를 확대하여 연산속도를 높이기 때문인데, 전 세계 주요 기업과 국가들은 AI컴퓨팅 인프라 확충을 위해 이미 수백조원을 투자했다. 2023~2024년 2년간 약 830억달러를 투자했고, 2032년에는 3600억달러 규모로 시장이 확대될 전망이다(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 2025년 6월 30일). 결국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GPU, NPU를 비롯해 메모리, 스토리지 등이 더 많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도 사용후 폐기물로 배출될 것이다.
디지털 인프라 장비에는 높은 전도성과 내구성을 제공해 전자기기 성능을 극대화하는 금, 은, 팔라듐과 같은 희소금속이 많이 포함돼 있다. 디지털 인프라에 포함된 주요 광물은 대략 25가지다. 고가의 희귀광물이거나 자원안보 차원에서 국가가 관리중인 핵심광물과 대부분 일치한다.
사용후 장비에서 이러한 광물질들을 회수해 우리 산업에서 재활용할 수 있다면 점점 심화되는 광물 확보의 어려움을 완화시키고 탄소감축을 통해 탄소국경세와 같은 무역장벽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갤럭시S25의 경우, 메인 PCB 도금에 적용된 금 100%, 스피커 모듈과 모터에 적용된 자석에 사용된 희토류 100%, 배터리에 사용된 코발트 50%, 전면 케이스에 적용된 강화 알루미늄 20%가 재활용 소재이다. 이제 재활용 소재의 확보는 수출기업의 가장 중요한 생존 요건이 돼 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듐, 게르마늄, 갈륨의 80%, 주석, 네오디움, 탄탈럼, 안티모니의 20~40%를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이 사용한다. 따라서, 재활용 소재 확보에 있어 ICT 분야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으며, 디지털 인프라 사용후 장비에 대한 자원순환 관리체계를 조속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내외 실태 및 현황
현재 국내 자원순환 제도는 수거에 어려움이 있는 생활가전과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용자가 전국에 산재되어 있고, 수거 과정에서 사용자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제품들에 대해 제조사의 비용으로 전국에 수거체계를 구축·운영하는 것이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의 핵심이다.
반면, 기지국, 서버, 스토리지 등 디지털 인프라 사용후 장비는 사업장 폐기물 처리 의무에 따라 전량 수거되고 있으며, 보안·네트워크안정성 등 철거·수거 과정에서 요구되는 특수성·전문성으로 인해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디지털 인프라 사용후 장비의 문제는 수거가 아닌 수거 이후의 재활용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데서 발생한다. 디지털 인프라 사용후 장비는 재사용·재자원화 가치가 높아 경쟁입찰을 통해 재활용업체에 매각되는데 매각 이후 자원순환 결과에 대한 추적이 안되고 있다. KCA 조사에 따르면 PCB 기판 등 고부가가치 부품 상당량이 국외로 수출되고 있으며, 일부 유해물질이 발생하는 장비들은 무단 방치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관리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반면, 해외에서는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에 대한 표준·전략·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ICT장비·네트워크에 대한 자원순환 가이드, 네트워크 자원효율화 평가지침 등을 발표하고 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자원순환 전략 보고서를 통해 통신사업자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 인프라 분야 기후대응 규제 및 지표를 마련하고 있는데, 통신네트워크, 데이터센터 사업자 대상의 행동지침을 2025년까지 수립·적용한다. 이미 프랑스와 벨기에 등의 통신규제기관은 통신사와 데이터센터의 폐기물 배출, 재사용·재활용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KCA, 국내 최초로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연구
우리나라도 국제 수준에 맞는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에 대한 조사와 정책수립 및 역량강화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KCA는 지난해 8월부터 금년 5월까지 10개월에 걸쳐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그간 깜깜이였던 통신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의 사용후 장비에 대한 처리실태와 규모를 파악하고, 자원순환 효과를 측정해 국내 최초로 디지털 자원순환 정책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통3사와 153개 데이터센터는 2023년 기준으로 약 2600만대의 장비를 운영하고 있으며, 1.4만톤의 사용후 장비를 배출한다. 이는 환경부가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에 따라 수거하는 전기전자폐기물(41.4만톤, '23)의 3.3%에 해당한다. 디지털 인프라 사용후 장비는 연평균 7.75% 증가해 2030년에는 2.4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재제조·재사용 등을 통해 폐장비를 줄이고, 재자원화를 통해 폐장비에서 광물을 추출하는 등 다각적 노력이 필요하다.
KCA 연구에서 가장 의미있는 발견 중 하나는 디지털 인프라 폐장비가 광물 재자원화와 탄소감축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밝힌 점이다. 서버와 통신 폐장비를 분석한 결과, 희귀금속 함량이 높은 PCB 부품 무게가 일반 폐가전(EPR 전기전자제품) 대비 4~1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CB에는 구리, 철, 알루미늄, 납, 주석, 금, 은, 팔라듐, 인듐, 네오디뮴, 갈륨, 탄탈럼, 코발트 등이 포함돼 있다. 디지털 인프라 장비 무게 중 PCB 부품 무게는 11~22%인 반면, 일반 폐가전은 평균 1.5~2.6%이다.
높은 PCB 비중과 고순도의 희귀금속 비율로 디지털 인프라의 kg당 탄소배출 감축효과 또한 일반 폐가전의 3~6배로 분석됐다. 이는 국내에서 추출 가능한 철, 플라스틱, 구리, 알루미늄과 PCB의 23가지 광물 중 금, 은, 구리, 팔라듐 4개 물질 기준으로만 산정한 것으로 일본, 중국에서와 같이 PCB에서 14개 또는 그 이상의 광물까지 회수 가능해진다면 그 효과는 지금의 몇 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는 재자원화 및 탄소감축 효과가 크고, 소수의 통신사업자로부터 폐장비 100%를 수거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인 자원순환 대상으로 평가된다. 체계를 잘 구축하여 민간·공공의 ICT 장비로 확장하고, 타 산업에도 적용하여 자원순환 산업에 부족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간다면 매우 좋은 정책 사례가 될 것이다.
◇향후 과제
디지털 인프라 사용후 장비의 자원순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태조사, 핵심광물 데이터베이스(DB) 및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을 통한 기반조성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개발지원, 컨설팅·실증사업 등을 통해 업체 역량을 키우고, 인증·포상 등을 통해 역량이 우수한 기업이 시장에서 우대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성화 정책도 요구된다.
실태조사는 정부가 주도해 사업자들 협조 하에 좀 더 광범위한 자료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연구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자료 확보였다. 매우 유용하고, 정책개발 차원에서 필요한 자료임에도, 영업상 비밀 등의 사유로 제공되지 않는 자료가 많았다. 또, 사업자간 통일된 기준이 없어 발표 또는 제공된 자료간 일관성이 없는 것도 큰 문제로 부각됐다. 이를 보완한 실태조사가 추진되어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현황과 효과, 개선도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되고, 정책에 필요한 실증자료가 적기에 제공되기를 바란다.
장비별 핵심광물 DB를 구축한다면 사용후 장비거래 과정 투명화, 재자원화 공정 효율화, 자원 회수율 객관성 담보, 탄소감축효과 인정의 기초자료 활용 등 여러모로 유용할 것이다. 장비별 핵심광물 정보를 확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제조사로부터 함유 물질 리스트를 제공받아 DB로 축적하는 방안과 폐장비를 분석하여 인벤토리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현재로서는 제조사와 통신사의 협조를 받아 자료를 축적함과 동시에 연구소에서 폐장비 물질분석을 수행하여 신뢰할 수 있는 공공DB를 구축하고 생태계 이해관계자에게 제공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생태계 활성화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기술개발 지원이다. LTE 장비 리팩토링과 같는 재사용·업사이클링 기술, 폐장비 정보 분석 및 위험성 안전처리 기술, 디지털 인프라 장비에 특화된 전처리 공정 자동화 및 광물 추출 등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여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역량을 제고할 필요성이 있다. 또 그 결과를 검증·확산하기 위한 실증사업·컨설팅 등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폐장비 정보 분석과 관련하여서는 조사과정에서 나온 정보보호 전문가들의 지적을 소개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네트워크 및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국가 정보보안 기본지침'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HDD, SSD와 같은 저장매체를 안전하게 폐기할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이자 금융서비스 업체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가 1500만 고객의 민감정보가 포함된 서버를 적절한 정보파기 조치없이 배출하여 2022년 SEC와 OCC로부터 각각 3500만달러와 6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은 바와 같이 폐장비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특히 통신 인프라에는 통신망 구조, 라우팅 등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어 이것이 유출될 경우 네트워크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정보보호 관점에서 디지털 인프라 폐장비를 분석하여 장비별 취약점이 있는지, 배출 과정에서 관리상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관리체계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끝으로 법제연구가 중요하다.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관련 실태조사, 자료수집, 기술지원, 탄소배출권 인정 등 활성화 정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법제화가 요구되며, KCA는 하반기에 통신분야 탄소중립 법제연구를 통해 이를 구체화 할 예정이다. 프랑스 통신규제청 Arcep은 네트워크 규제 전반에 환경문제를 통합하는 통신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며 정책개혁을 활발히 추진 중이다. KCA도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에너지 효율화 등 통신분야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필요한 제도적 방향을 연구하고 결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노력 및 향후일정
그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탄소중립 전담반 및 민간협의회를 통해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관련 정책을 개발했으며, 제4차 전파진흥기본계획에 이동통신 폐기지국 자원 재활용 과제를 반영했다.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기반조성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예산 확보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예산에는 반드시 반영되어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 지난 1월부터 환경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신3사-KCA-환경공단 등이 협력해 하반기 시범사업을 목표로 실행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시범사업은 디지털 인프라 자원순환 체계를 설계하고, 운영함에 있어 현실에서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분별해 내고 개선점을 찾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모든 참여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혜를 모아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필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정치학 석사,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정보기술경제학 석사를 취득했다. 옛 정보통신부 국제협력관실, 옛 방송통신위원회 그린IT팀장, 정보보호팀장, 공보팀장, 옛 미래창조과학부 다자협력담당관, 과기정통부 정보보호기획과장, 우정사업정보센터장, 중앙전파관리소장을 역임하고, 2023년 11월 제8대 KCA 원장에 취임했다. 27년간 전파·방송·정보화·정보보호·국제협력 분야 정책 수립과 실행을 위해 노력한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