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 K석유화학 비상등…신소재 찾아 나선다

2024-11-29

돌파구 찾는 석유화학

최근 재계 서열 6위 롯데의 부도 소문이 퍼졌다. 롯데지주·롯데케미칼·호텔롯데의 차입금이 29조9000억원에 달해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놓일 거라는 내용이었다.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주가는 소문이 퍼진 18일 하루에만 각각 6.6%, 10.2% 떨어졌다. 이어 21일 한국예탁결제원은 “롯데케미칼에 기한이익상실(EOD·회사채 조기 상환 의무) 원인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고했다. 돈을 빌리는 조건으로 재무비율 유지 등의 조건을 달았는데, 그 조건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합성수지, 지난해는 한국 수출 품목 5위

EOD 사유가 발생한 회사채는 총 2조450억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롯데는 은행보증을 통해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신용보강을 하기로 하고, 21일 그룹의 랜드마크이자 핵심 자산인 서울 송파구의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키로 했다. 롯데케미칼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그룹의 ‘효자’였다. 하지만 석유화학 산업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아픈 손가락’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2022년부터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데, 올해 3분기에는 영업손실만 413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4분기 연속 적자다.

다른 석유화학 기업도 수익성 악화가 심상찮다. LG화학은 지난해 2조5292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올해 1조2000억원대로 반토막이 날 전망이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498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1% 감소했는데, 석유화학 부문은 38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화솔루션 역시 케미칼 부문에서 올해 3분기 310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산업 특유의 사이클을 고려해도 심각한 수준”이라며 “과거였다면 농담으로 여겼을 ‘이러다 회사 망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더는 농담처럼 안 들린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는 나프타(가연성 액체 탄화수소 혼합물)를 이용해 전자기기·의류·생활용품 같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합성수지와 합성섬유 등 기초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그래서 반도체와 함께 ‘산업의 쌀’로 불리는데, 한국 수출의 대표적인 수출 효자 산업이다. 합성수지의 경우 지난해 기준 반도체와 자동차 등에 이어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중 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석유화학 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2022년 543억 달러(약 75조7000억원)였던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은 지난해 457억 달러(약 63조7000억원)로 15.8% 감소했다.

수익성 악화는 한층 충격적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21년 13.4%에서 지난해 0.6%까지 급락했다. 팔아봤자 이득이 거의 안 남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업계의 전언과 기업 실적 등을 종합하면,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2015~21년 호황 사이클에 있었다. 수요와 공급 상황이 모두 잘 맞아떨어져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중 유동성이 폭발하고 각 가정에서 전자기기와 가구 등의 구입이 늘면서 석유화학 제품 수요는 급증한 반면, 팬데믹 타격이 컸던 중국 등의 공장 가동률은 떨어지면서 공급이 부족해졌다.

2022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팬데믹 때 급증했던 수요가 각국의 돈줄 죄기와 경기 침체, 엔데믹 전환 등으로 줄어든 반면 공급은 거꾸로 과잉 상태가 된 것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발(發) 공급 과잉이 치명적이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 패권 장악을 2016년 무렵부터 7대 석유화학산업단지 구축에 나섰다. 그 결과 중국은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을 2020년보다 60% 많은 연간 5174만t(지난해 기준) 생산 중이다. 지난해 한국의 에틸렌 생산능력(1280만t)의 약 4배다. 그러다 보니 2010년 47.8%였던 한국의 대(對)중국 석유화학 제품 수출 비중은 지난해 37.3%까지 떨어졌다.

정부, 원료 관세 인하·인센티브 등 검토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경기 부양 효과가 제한적인 가운데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이 상승하면서 한국산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 감소 중”이라며 “중국 경기 침체로 (석유화학) 제품 가격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기업들은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LG화학은 올해 3월 여수 스티렌모노머(SM)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여수 NCC 2공장의 매각을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10월에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청산을 발표하는 등 해외 법인을 2022년 18개에서 올해 14개로 줄이는 데 나섰다.

기업들은 또 신소재와 친환경소재, 바이오소재 등 아직 공급 과잉이 나타나지 않은 석유화학 산업 분야로의 체질 개선을 모색 중이다. 정부도 고민이 깊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5일 공식석상에서 “석유화학 산업 재편과 관련해 연관 부처가 모두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석유화학 산업 재편을 위한 공정거래법 규제 완화, 그리고 원료의 관세 인하나 세제 인센티브 등의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체력을 키워야 공급 과잉 해소와 비용 절감에 나설 수 있다”며 “정부가 이를 촉진하기 위한 세제 혜택 마련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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