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띠동갑은 친구고 띠띠동갑은 스승이다

2025-06-08

1967년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학생이었던 조안리(1945)와 학장을 지낸 케네스 킬로렌(1919) 신부의 결혼은 한국 사회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무려 26살이었고 스승과 학생 사이였으며 게다가 신랑이 신부님 신분이었으니 당시 사회적 규범과 관행을 파괴한 대사건이었다. 결국 이들은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조안리는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후 다시 귀국해 베스트셀러 작가, 여성신문 이사장 등으로 큰 활약을 했다. 무엇보다 앞서가는 여성리더로서 좋은 롤모델이 됐다.

요즘은 나이 차이가 많은 커플도 늘어났고 세대 차이를 넘는 친구문화도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몇살만 더 많아도 친구 되기를 거부하고 꼭 선배 대우를 받으려는 문화가 있었다. 장유유서라는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장유유서를 파괴해야 성공하는 세상이 됐다.

띠동갑은 보통 12살 차이가 나는 사람을 말한다. 띠동갑이란 띠는 같은데 나이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24살 차이가 나거나 36살 차이가 나도 띠동갑이다. 24살 차이가 나는 사람은 ‘띠띠동갑’이라고 부르고, 36살 차이가 나는 사람은 ‘띠띠띠동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띠동갑이나 띠띠동갑은 함께 어울리기가 어려웠다. 12살 나이 차이가 나면 대선배이고 24살 차이가 나면 아버지뻘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띠동갑을 만나야 성공하는 세상이 됐다. 12살 차이가 나면 서로 생각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이 다름이 만나면 새로운 자극이 되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 더구나 젊을수록 신기술 사용 능력이 뛰어나다. 인공지능이나 신기술은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젊은이는 띠동갑 선배에게서 인생 경륜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1922)과 법정 스님(1932)은 10살 차이지만 종교·사상·나이를 초월해 서로 존중하는 벗으로 교유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스님을 만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고, 법정 스님은 “그분이 계신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고 했다. 종교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성장 배경도 다른 두 위인이 친구처럼 교류했으니 얼마나 큰 우주가 형성됐을까?

자본주의의 현인(賢人) 소리를 듣는 워렌 버핏(1930)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1955)는 25살 차이가 난다. 아버지와 아들뻘이다. 이들은 나이 차를 넘어 막역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나는 궁금한 일이 있으면 한밤중에도 워렌 버핏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들은 25살 차이 덕분에 서로 다른 정보와 지혜를 공유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동갑내기끼리만 어울리며 살면 우주가 좁아진다. 띠동갑은 막역한 친구로 사귀고, 띠띠동갑은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모두 스승으로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윤은기 한국협업발전포럼 회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