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조선인을 논하다

2025-05-08

“만약 일본의 지위를 러시아·독일·영국이 대신한다면 어떻겠는가 하고 반문한다면, 누구라도 지금이 도리어 조선인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답할 터이다. 따라서 조선인과 동화해야 할 이로서는 세계에서 일본인이 가장 충분한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일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은 지금까지 논한 조선인의 특성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야말로 조선인 교화의 사업이 대단히 어려우면서도 또한 대단히 흥미로운 이유이다.”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번역·해제 구인모.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의 한 대목입니다. 이 책은 다카하시 도루가 1921년 조선총독부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한 <조선인>과, 그 전후로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을 번역하여 엮은 책입니다.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한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총독부의 구관제도조사사업에 참여하여 조선의 구술문화유산을 수집하고, 고도서의 정리·해제를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이후 경성 제국대학 조선어조선문학전공 교수, 혜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1945년 이후에는 일본의 대학에서 조선학을 가르쳤습니다.

다카하시 도루가 조선인의 특성을 알고자 했던 이유는 식민통치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조선인의 민족성을 밝히는 다카하시 도루의 논리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전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근거가 몹시 빈약하고, 왜곡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쉽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식민당국은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인을 일본인과 다른 열등한 민족, 가르쳐야 할 대상이며 교화시키기 대단히 어려운 민족으로 여기고 차별적인 식민통치를 시작했습니다. 1912년에 시행된 조선태형령은 일제 식민통치의 방향성을 잘 보여줍니다. 거리에는 무장한 헌병경찰들이 배치되었고, 법을 어긴 조선인을 즉결 심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일본인이 법을 어기면 벌금을 내도록 했지만, 조선인은 대단히 가르치기 어려웠기에 때려서 가르치도록 한 것입니다.

조선태형령은 1919년 3.1운동이 발발한 이후 폐지됐습니다. 일제는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겪고 나서 통치의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다카하시 도루 역시 1919년 이후 조선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3.1운동에 대해 조선인의 특성이라고 말했던 ‘순종성’을 제외하기에 충분한 사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성정이 원래 바라지 않는 바이므로, 질서를 지키고 각자의 분수에 따라 편안하게 생활하게 되면, 다시 삶의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선인의 특성을 보건대, 오늘날 유형무형의 불안정한 상태는 머지않아 지난날의 의병 소요가 그러하듯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잊힐 것이고, 다시 친일의 분위기가 조선인 전체에 감돌게 될 시기가 도래하리라 믿는다.”

이 책은 조선인의 특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지만, 책을 읽고 나니 조선인이 아니라 식민지 통치 권력의 생각을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오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가, 그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에게 나의 권한을 위임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를, 당신을, 우리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잘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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