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이 짙게 깔린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수만명의 가톨릭 신도들이 탄성을 쏟아냈다. 7일(현지시간) 오후 9시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전 세계가 지켜봤다.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첫날, 새 교황은 선출되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성 베드로 광장에 교황 선출의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려 모여든 이들이 4만5000명에 달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요가 매트나 돗자리를 깔고 언제 피어오를지 모를 연기를 기다렸다. 이날 바티칸에는 오전에 비가 내렸고, 낮에는 뙤약볕이 쏟아졌다. 과테말라에서 23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호드리고 핀토는 해가 넘어갈 때까지 광장을 지키며 콘클라베의 첫 투표 결과를 지켜봤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세 시간 전만 해도 지옥이었다”라며 “죄송합니다. 성 베드로”라고 덧붙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제니퍼 라울리는 자녀들에게 엽서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첫 연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 좋은 ‘굴뚝 뷰’를 찾으러 주변의 건물 옥상이나 발코니를 찾는 이들도 있었다.
오후 5시43분 교황청 전례원장인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엑스트라 옴네스(모두 나가라는 뜻의 라틴어)”를 선언한 후 시스티나 성당의 문이 굳게 닫혔고, 군중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투표에 들어간 성당에서는 긴 침묵이 시작됐고, 설렘과 긴장으로 웅성대던 광장도 시간이 지나며 조용히 굴뚝을 지켜봤다. 아무것도 피어오르지 않은 굴뚝에 앉아 한참을 머물다 날아간 갈매기가 광장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회의가 길어지자, 광장의 인파는 박수갈채를 보내거나 “힘내라”고 외치며 콘클라베의 결정을 응원했다.
바티칸의 검은 연기는 추기경단이 차기 교황에 대한 중론을 모으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시스티나 성당 폐문으로 격리된 133명의 추기경은 ‘최고 교황으로 선출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직사각형의 투표용지에 자신이 추천하는 인물의 이름을 적어낸다. 세 명의 검수자가 용지를 확인한 후 세 번째 검수자가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 이를 기록한다. 매 개표에서 추기경단 각자가 전체 표심의 방향을 가늠하는 순간이다. 이날 개표에서는 전체 인원 3분의 2인 89표 이상을 득표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날 결과는 애초 예상됐던 오후 7시보다 2시간가량 늦게 나왔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는 “2013년 콘클라베와 비교해보면, 올해 콘클라베는 같은 시간에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20분 늦게 결과(연기)가 나왔다”며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한 추기경들이 18명 더 많고, 대부분이 첫 콘클라베이고, 여러 명이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해 투표 진행에 더 긴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검은 연기를 예상했다는 반응도 다수였다. 안드레아 보나파티는 연합뉴스에 “첫날엔 교황 선출이 어려우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건 없다”며 “내일이면 새 교황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스 산티니는 가디언에 “첫날에 교황이 선출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연기가 밤하늘에 흩어지자 밤늦도록 광장을 지킨 이들은 “내일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하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