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정부는 아직 대북 정책을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대북 정책에 대해 애매모호함을 유지 중이다. 지난 15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포괄적 대북 정책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관례적 언급이었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두 사람의 개인적 친분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더욱 그렇다. 양측은 서신 교환도 거의 없으며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그 어떤 의미 있는 언급도 없었다.
북의 도발에는 덜 관대해지고
중국에 대북지원 중단 압박할 듯
평화상 불발 시 관계개선도 난망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노리고 있다. 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을 중재하고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한 사실을 트럼프는 여전히 분개하고 있다. 트럼프의 측근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종식을 통해 트럼프는 노벨 평화상 수상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에 의도치 않은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미국의 역할 부재 때문에 한반도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노벨 평화상 수상의 길목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의도하지 않은 전쟁의 위험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조 바이든 정부 때보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덜 관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이 북한의 무기 개발에 더 직접적으로 대응해 지난해 발표한 북한의 무기 현대화 5개년 계획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응 때문에 북한은 대남 도발에 나설 때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욕심이 불러올 간접적 영향은 더 심오하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의 항구적 평화는 러시아의 양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수용할 수 없는 과도한 수준의 요구를 고집하고 있다.
러시아가 현실적 협상에 나서게 하려면 미국은 상당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 물론 직접적인 압력에는 제한이 있겠지만, 러시아가 중국·북한·이란에 의존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중국을 전략적 적성국으로 간주하니 트럼프 2기 정부는 바이든 정부 때보다 훨씬 더 강경한 대중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러시아 지원 중단을 위한 직접적 압력 행사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루비오 장관도 애초에 핵무기 개발 중단에 방점을 둔 강력한 대북 제재를 북한이 견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압력을 넣어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와 장병을 공급하는 대가로 곡물과 석유를 받고 있는데 중국은 이런 북한에 여전히 주요한 원조 제공 국가다. 그렇기에 대러 지원을 북한이 중단하지 않으면 중국이 대북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북한에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과연 중국이 미국의 이런 압력에 응할 것인가. 이는 미국의 제재 위협 강도와 가능성에 달렸다. 의외로 중국이 순순히 응할 수도 있다. 북·러 밀착으로 북·중 관계는 악화했다. 김정은과 시진핑의 소통을 보면 알 수 있다. 푸틴 대통령에겐 구애 공세가 넘쳐나는데 시 주석에 보내는 메시지는 냉랭하다. 최근 북한에서 열린 행사에 중국 측 참석자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북한의 러시아 전쟁 지원이 중단되지 않는 상황에서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하면 북한은 큰 딜레마에 직면한다. 중국의 원조든 러시아의 곡물·석유 지원이든 중단된다면 북한의 취약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만약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북한은 대러 관계를 포기하고 중국의 원조를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원조가 없으면 러시아의 무기 지원 요구가 지속할 것이고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하고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이번에도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대미 관계 회복이나 미국의 대북 원조 가능성도 더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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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