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선택했다고 느끼도록 유도하는 강요

2025-08-31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88> 선택했다고 느끼도록 유도하는 강요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날의 이벤트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드라마와 영화에서나 보는 모습일 수도 있겠으나 레스토랑이라는 곳이 가진 일반적인 모습이 있다. 썸 타는 이와 혹은 배우자나 애인과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고 식사를 하러 간다고 가정해보자.

백열등 빛으로 가득 채워진 고급스런 레스토랑의 내부 모습이 창문을 통해 보여진다. 입구에서 문을 열기 전 당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레스토랑에서 진행하는 포도주(이하 와인)의 행사가격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 정갈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프런트에서 당신에게 예약 여부를 묻는다.

직원이 예약을 확인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직원의 배경이 되어 주는 벽의 나무 렉 사이사이에 꽂힌 와인들이다. 예약을 확인한 직원은 당신을 예약석으로 안내한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테이블에는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보가 덮혀 있고 그 위에 반듯하게 놓인 식기구와 투명한 와인 잔이 반사하는 백열등의 빛이 눈부시다. 동석한 이와 자리에 앉고 2~3초 뒤 당신에게 건네진 것은 메뉴판이다. 메뉴판을 올려진 음식을 보며 식사를 선택한다. 식사를 주문한 당신에게 또 하나의 메뉴판이 주어진다. 바로 와인 리스트다.

한글로 쓰였으나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을 용어로 이루어진 와인 이름을 보며 그 옆에 있는 숫자로 눈이 간다. 가격이다. 천차만별의 가격표. 넘기며 훑어보니 가장 저렴한 가격은 4~5만 원 선, 가장 비싼 가격은 5~60만 원 선이다. 당신이 선택한 와인의 가격은 6~8만 원 선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품격을 따지는 독자의 경우 10~20만 원 선의 와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또는 자리의 품격에 따라 더 높은 가격의 와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거다.

모던한 빛 아래에서 진행되는 맛있는 식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리다. 주고받는 대화의 소리 못지않게 와인을 담은 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자리를 빛낸다. 잔을 비워가며 며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입가에 미소가 이어진다. 와인을 마저 마시며 식사를 마무리한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서부터 여러분은 자신들도 모르게 계속 강요를 당했다. TMI였던 와인 행사가격으로 한 번, 프런트의 직원 뒤에 나무 렉사이 진열된 와인으로 한 번, 자리에 앉으면서 테이블에 놓인 와인 잔으로 한 번, 마지막으로 와인리스트를 보면서 한 번, 이렇게 눈으로만 확인한 네 번에 걸친 강요는 여러분에게 일반적으로 고기에 레드 와인이라 알려진 통설을 되뇌게 한다. 결국 여러분은 레스토랑에서 유도한 설계에 의해 식사에 곁들일 와인을 정한다.

거기에 레스토랑은 와인 리스트에 담긴 와인의 가격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와인으로 상한선을 잡고 가장 낮은 가격의 와인으로 하한선을 설정한 뒤에 고르는 이가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중간가격의 와인을 포지셔닝해서 마진을 설계한다.

여러분은 이렇게 설계된 메뉴판을 보며 스스로 선택한 거라고 느끼는 강요를 받는다. 레스토랑은 마진의 폭이 적은 고기를 팔면서 마진폭이 상대적으로 큰 와인을 여러분에게 판매하기 위해 입구에서부터 여러 차례에 걸친 강요가 계속 이어지도록 설계돼 있다. 알면서도 당할 수 있으나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도된 선택은 판매 단가가 높은 곳일수록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글 = 이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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