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끝난 뒤 고위공직자 워크숍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미국은 협상에서 70여 년 동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없이 우리를 밀어붙였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NYT)가 “글로벌 갈취”라고 했을까. 일본이나 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의 상호관세(15%)라곤 하지만, 0% 관세였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은 뼈아프다.
‘사이다 발언’으로 표현되는 이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번만큼은 대다수 국민과 대통령의 심정이 일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력은 어떻게 키워지나. 그 핵심에 경제력이 있다. 그 상당 부분은 기업의 몫이다.
법인세 인상, 노란봉투법 등
기업들 옥죄는 정책 줄이어
기업 강해져야 국력도 강성
당장 좋은 사례가 있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 조선업이다.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필사적인 미국이 한국과의 조선 협력에 매달리는 것도 미국 조선업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건조한 선박만 미국 내 운송이 가능하도록 한 존스법(Jones Act) 등의 과잉보호가 초래한 고비용-저생산성 구조가 고착돼 조선소들이 쓰러진 결과다. 여기서 단순 명료한 시사점 한 가지. 기업이 튼튼해야 국력도 강성할 수 있다.
그런데 관세 협상이 끝난 뒤 몰아치는 현 정권의 정책은 거꾸로다. 세금은 인상, 규제는 강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성 조합이다.
우리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은 지금도 경쟁국보다 무거운 편이다. 지방세를 포함한 최고 법인세율 26.4%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9%, 2024년)보다 2.5%포인트 높다. 202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율은 3.6%로 주요 7개국(G7) 평균(2.4%)보다 1.2%포인트 높다. 일본 3.1%, 독일 0.7%, 미국 1.5%다. 이제 기업들은 밖에선 관세, 안에선 법인세라는 세금 호랑이를 만나게 됐다.
앞서 정부는 13조8000억원의 소비쿠폰을 전 국민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래놓고 곧이어 기업 증세에 착수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먹지 않는다는 옛말이 무색하다.
국회에선 여당이 ‘더 센 상법’과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기 직전이다.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권에 위협이 된다면, 노란봉투법은 노사 관계의 틀을 뒤흔들 발화물로 가득하다. 핵심은 하청 근로자도 원청 사업주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구조조정, 사업 통폐합 등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경우 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수백, 수천 개의 1~4차 하청업체들과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노조들과 연간 수백 번의 교섭을 해야 하고, 해외에 공장을 짓는다고 파업을 벌이는 경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란봉투법이 노사 관계에서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쯤 되면 정상적 기업 운영에 비상등이 켜졌다고 봐야 한다. 주한 유럽상의와 미국상의가 한국시장 철수 등을 경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수많은 중소 하청업체와 근로자에겐 좋기만 할까. 기업 생태계는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원청 대기업은 강경 노조가 있거나 파업 리스크가 큰 하청업체와의 거래를 꺼릴 것이다. ‘하청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는 흘려버릴 말이 아니다. 결국 도급이 끊긴 하청업체가 파산하고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는 ‘을의 악몽’이 펼쳐질 수 있다. 현 정부는 자칭 ‘실용적인 시장주의 정부’라고 한다. 그 ‘실용적 시장주의’가 무엇인지 헷갈린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노동자 친화적이긴 해도 기업 친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재명 정부 출범 불과 60여 일, 파업하기 수월한 환경과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향해 가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처지는 곤궁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기업이 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면 국력을 키우기도 힘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