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가 왔다!” 세월이 알려준 ‘궁극의 호러 영화’

2025-02-05

샤이닝

감독 스탠리 큐브릭

배우 잭 니콜슨, 셜리 듀발, 대니 로이드

상영시간 146분

제작연도 1980년

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긴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완벽주의로 소문난 영화감독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극성인 위인을 꼽으라면 단연 스탠리 큐브릭이다. 한 장면을 100번 넘게 다시 촬영하는 완벽주의자 중의 완벽주의자가 만든 호러 영화는 어떨까. 큐브릭의 호러 영화 <샤이닝>(1980)을 보면 편집, 촬영, 미술, 음악까지 요소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 커팅처럼 완벽하게 세공된 호러 세계에 떨어진 기분이 든다.

주인공 ‘잭’(잭 니콜슨)은 겨울 동안 미국 콜로라도주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으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교사 일을 그만두고 느긋하게 소설을 쓰던 잭에게는 제격이었다. 전임 관리인이 아내와 쌍둥이 딸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말을 듣지만 개의치 않는다. 잭은 아내 ‘웬디’(셜리 듀발)와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를 데리고 호텔에서 생활한다. 대니는 상상의 친구 ‘토니’와 대화하는 우울한 소년이다. 영혼과 소통하는 초능력 ‘샤이닝’을 가진 대니는 호텔에서 쌍둥이 소녀를 비롯해 이상한 것들을 본다. 이윽고 호텔이 폭설로 고립되자 잭은 점점 하얗게 미쳐간다.

큐브릭이 <샤이닝>에서 펼친 가장 놀라운 마법은 ‘공간’이다. 관객은 <샤이닝>을 보다 불현듯 기이한 공간감을 경험한다. 오버룩 호텔의 공간은 가도 가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큐브릭은 카메라를 흔들림 없이 고정하는 ‘스테디 캠’ 촬영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무한한 공간을 펼친다. 대니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호텔 내부를 돌아다니는 장면에선 대니의 등 뒤에서 카메라가 쫓아가며 원혼이 대니를 지켜보는 느낌을 준다. 미로 정원 추격전 장면에서도 잭이 미로를 떠도는 유령이 된 것처럼 매끄럽게 움직이면서 스테디 캠의 진수를 보여준다. 호텔 내부를 끊임없이 수평 이동하는 카메라를 따라가던 관객은 이 공간을 아무리 이동해도 끝에 닿을 수 없다는 공포감에 천천히 젖어든다.

관행을 시원하게 깨뜨리는 신묘한 편집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샤이닝>은 웬디와 대니가 미로 정원에서 헤매는 장면, 잭이 호텔 로비에서 미로 모형을 내려다보는 장면, 카메라가 미로 정원을 위에서 아래로 비추는 장면을 연이어 보여준다. 관객은 오버룩 호텔을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와 잭이 일체화해 웬디와 대니를 ‘감시하는 시선’(overlook)에 가두는 느낌을 받는다. 쌍둥이 소녀를 대니가 목격했을 때는 배경을 고정한 채 피사체만 비연속적으로 촬영한 장면을 연결하는 ‘점프 컷’을 활용해 쌍둥이가 대니에게 덮쳐오는 효과를 냈다.

<샤이닝>의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귀신 들린 집’ 호러물이다. 하지만 깜깜한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깜짝 놀래키는 귀신이나 피가 철철 흐르는 신체 절단에 의존하지 않는다. 큐브릭은 촬영과 편집의 힘으로 ‘귀신 들린 집’이라는 공간 자체에 관객을 빠뜨려 최면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래서 <샤이닝>에선 집의 일상적 정경조차 공포가 된다. 잭이 타자기로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은 바보가 된다” 문장을 수없이 반복해 타이핑하는 장면은 ‘소름’ 그 자체다. 큐브릭은 잭이 타이핑하는 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안 보이는 장면에서도 실제 문장을 타이핑하라고 지시했다.

주인공을 연기한 잭 니콜슨은 명배우답다. 시간이 갈수록 광기에 사로잡혀 점점 싸늘하게 변해가는 표정과 대사로 관객을 압도한다. 머리털 빠진 아저씨의 익살스러운 웃음 너머에 섬뜩한 어둠이 엿보인다. 니콜슨이 부서진 문짝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며 “자니가 왔다!”고 웃는 장면은 특히 유명하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TV 방송 ‘자니 카슨 쇼’의 밈을 따온 대사인데 니콜슨의 애드리브로 알려졌다. 큐브릭이 이 장면만 3일 동안 촬영하면서 니콜슨은 문짝 60개를 때려부쉈다.

창백하고 깡마른 셜리 듀발도 잭 니콜슨에 못지 않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듀발은 니콜슨의 미친 도끼질에 큼직한 눈을 더욱 크게 뜨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꽥 비명을 지른다. 연약하면서도 귀여운 흰 토끼가 생각나는 배우다. 니콜슨과 듀발은 모두 <샤이닝>을 자신의 연기 경력에서 가장 어려웠던 작품으로 꼽았고, 특히 니콜슨은 듀발의 연기에 대해 “내가 봤던 연기 중에서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탠리 큐브릭은 <샤이닝>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흥행 성적은 물론 비평도 좋지 않았다. 심지어 큐브릭은 <샤이닝> 때문에 최악의 영화와 영화인에 수여하는 ‘골든 라즈베리상’ 1회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원작 소설을 집필한 작가 스티븐 킹조차 영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큐브릭이 소설을 거의 개조하다시피 새로운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킹은 자신의 소설 <아웃사이더>에선 대사를 통해 대놓고 질타했다. “<영광의 길>(1957)은 아무리 못해도 열두 번은 봤을 거예요. 큐브릭 감독의 걸작이죠. 제 생각에는 <샤이닝>이나 <배리 린든>(1975)보다 나아요.”

45년이란 세월이 지난 현재 <샤이닝>의 위상은 어떨까. 지난해 영국 유명 영화잡지 ‘엠파이어’는 <샤이닝>을 역대 최고의 공포영화 1위에 선정하며 “궁극의 호러 영화”라고 평가했다. “뒤늦은 후회는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가. 시간은 친절하게도 큐브릭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샤이닝>이 정확하고, 꼼꼼하며, 초현실적이고, 시각적 경이이며, 광기에 관한 빛나는 연구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작이란 사실을 알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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