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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및 감금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취업 사이트나 SNS 등에서 '고소득 보장'을 미끼로 입국을 유도한 뒤 강제로 주식 리딩방이나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범죄에 끌어들이거나, 피해자 가족에게 금품 송금을 강요하는 식이다. 피해자들은 범죄 소굴로 끌려가 감금과 고문, 마약 강제 투약 등 협박을 당하다 실종되거나 혼수상태 또는 사망한 채 발견되는 일도 잦다.
한국인 피해 건수는 2022년 연간 10건 수준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 8월까지 330건으로 급증하는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논란이 이어지자 과거 캄보디아 여행을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오던 중 납치 위기를 겪었던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경험담과 그룹 빅뱅 출신 승리가 과거 캄보디아 행사에서 한 발언까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 정부 외교 무능”…정치권 질타
국민의힘 '이재명 정권 무능외교 국격실격 대응 특위' 소속 김건·유용원 의원 등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살 우리나라 대학생이 범죄조직의 고문 끝에 캄보디아에서 살해당했다. 정부는 사건 발생 후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시신조차 고국으로 송환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외교 무능을 탓했다.
이들은 "캄보디아 경찰에 체포된 한국인 역시 지난해 46명에 올해는 7월까지 144명이지만 제대로 된 영사조력을 못 받고 있다"며 "현지 정부와 직접 협의하고 신속히 대응해야 할 대사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겠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경원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미얀마·태국 등에서도 중국계 범죄조직이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납치해 피싱 범죄에 강제로 동원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며 "외교부·경찰청·법무부·검찰·국정원 등 관련 기관이 합동으로 긴급 태스크포스를 즉각 구성하고, 즉시 우리 국민의 피해 실태를 파악해 피해자 전원의 안전한 귀국을 위한 전면적 외교 작전을 가동해야 한다"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외교부는 11일 "빠른 시일 내에 부검과 국내 시신 운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캄보디아 측과 계속 협의할 것"이라며 해명자료를 내놨다. 외교부는 "주캄보디아대사관은 캄보디아 경찰 측으로부터 A씨의 사망 사실을 통보받은 직후부터 캄보디아 측에 신속한 수사와 용의자에 대한 엄중한 법적 조치를 요청하는 한편, 국내 유가족과 수시로 직접 소통하며 현지 수사 진행 상황과 부검 관련 절차를 안내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경찰청 소속 부검의 참여 아래 현지 부검을 진행하기 위한 캄보디아 측 내부 절차가 지연되자 캄보디아 관계 당국에 공한을 발송하고 수차례 면담을 진행해 캄보디아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지속해서 요청했다"고 전했다.
또한 "캄보디아 측과의 각급 소통 시마다 우리 국민 사망에 대한 강력한 유감을 지속 표명하고 조속한 관련 절차의 진행을 요청해왔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지난 8월 캄보디아 캄폿주 보코 산악지대의 한 범죄단지에서 20대 한국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감금 당시 중국 국적의 범죄 조직원으로부터 마약 투약을 강요받는 영상도 공개됐다. KBS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 남성 A(20대·사망)씨는 겁에 질린 듯한 모습으로 하얀 연기를 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 조직원은 “죽여버리기 전에 마셔, 빨리 쭉! 더 세게!”, “더 세게 빨아! 숨 참지 못할 때까지 빨아”라며 마약 투약을 강요했다. A씨는 두려움에 떨며 흡입을 이어갔다.
그는 사건 발생 한 달 전인 7월 “캄보디아에 가서 은행 통장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제안을 받고 캄보디아로 건너갔다가 납치 및 감금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휴대전화로 조선족 말투의 남성은 A씨 가족에게 전화해 "A씨가 이곳에서 사고를 쳐 감금됐다. 5000만 원을 보내주면 풀어주겠다"고 전화로 협박했고, A씨 가족은 캄보디아 대사관과 경찰에 신고했지만 대사관은 "캄보디아 현지 경찰에 위치와 사진 등을 보내 신고하라"고 했고 경찰은 "돈을 보내면 안 된다"고 했다. A씨 가족은 A씨가 어디에 있는 지 알 수가 없었고, 결국 A씨는 범죄 조직원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온몸에 멍이 든 채 대형 쓰레기통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현지 수사 당국은 조직이 피해자를 마약에 중독시켜 탈출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강제 투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의 사인은 고문과 극심한 통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그런데 A씨 시신은 2개월이 넘도록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A씨의 시신은 부검과 현지의 화장 일정 등을 고려해 이달 중 국내로 들어올 예정이다. 경찰은 "현지 경찰과 공조해 A씨의 출입국 경위와 해당 범죄조직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9월에는 캄보디아 프놈펜 번화가 카페에서 50대 한국인 남성이 괴한들에게 납치와 감금, 고문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범인은 중국인 4명과 캄보디아인 1명으로 모두 체포됐고 피해자는 호텔에서 구조됐다. 사건 현장에서는 권총과 쇠파이브, 마약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같은 달 캄보디아로 5박 6일 여행을 떠났던 40대 한국인 남성도 현지에서 실종됐다가 혼수상태로 현지 병원 중환자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GPS 기록이 잡힌 곳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호텔이었다.
이에 정부는 최근 캄보디아 내 한국인 취업 사기·감금 피해가 증가하자 지난달 프놈펜, 시아누크빌 등 캄보디아 일부 지역의 여행 경보를 격상하고, 주캄보디아대사관 경찰 인력 등을 증원한 바 있다.
세계적 관광지 캄보디아…한국인 왜 노리나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 시엠립, 프놈펜 등 세계적 명소, 저렴한 물가,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동남아시아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한국인도 해마다 15~17만명이 꾸준히 방문해 왔고, 최근 범죄 우려 등으로 다소 줄었다고는 하지만 올해 7월까지 캄보디아 방문 한국인 누적 관광객 수 역시 10만명이 넘었다.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인 다수가 참여하는 박람회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 6월 프놈펜에서는 '미니 한류박람회'가 열려 K-pop 페스티벌과 K뷰티 메이크업 쇼 등이 열리기도 했다. 대학생들의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봉사 프로그램도 다수 열리고 있다.
캄보디아 범죄 조직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 및 한류 위상이 커지자, 한국인을 돈이 되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관광 산업이 침체되면서 현지 경제가 크게 위축됐고, 일자리 감소와 생계가 시급해진 상황, 미약한 감시와 치안 체계 속에서 온라인 도박과 불법 사기, 인신매매 등 범죄가 확산됐다.
하지만 현지 경찰력과 치안 시스템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경찰과 공무원 부패로 조직적인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지 협조가 어렵다보니 대사관의 즉각적인 대처가 쉽지 않고, 현지 경찰의 수사 및 대응도 느리다. 최근에는 중국계 포함한 국제 조직이 개입하고, 범죄 수법이 갈수록 정교해져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외교부는 현지 한국인 감금 사태에 따른 캄보디아 경찰 대응 방식을 문제삼고 있다. 현지 경찰은 신고를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며 △신고자의 현재 위치 △연락처 △건물 사진(명칭, 동·호수) △여권사본 △얼굴 사진 △본인 구조 요청 영상 등을 전송해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과거 제 3자가 신고해 출동해보니 정작 당사자들이 감금 사실을 부인하고 스캠센터 잔류를 희망하는 등의 사례가 지속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관찰된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외교부는 "'구출'된 후 대사관의 영사조력을 거부하고, 한국 귀국 후 다시 캄보디아에 입국해 온라인 스캠센터로 복귀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며 "이러한 자발적 가담자들은 국내 우리 일반 국민에 대한 잠재적인 보이스피싱 가해자로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인근 국적 여행객도 주요 표적이다. 최근에는 일본인의 피해도 보도된 바 있다. 일본 도카이TV에 따르면 최근 캄보디아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등 특수 사기에 관여한 19세~52세까지의 남녀 29명이 본국으로 송환됐는데,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고문을 당하거나 팔을 절단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인터폴은 캄보디아 현지에 강제 감금돼 범죄에 동원된 이들의 국적이 전 세계 60여 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제엠네스티, 유엔과 같은 국제 인권단체는 "캄보디아가 국제 범죄, 인신매매 중심지로 변질되고 있다"며 "조직범죄와 당국 유착, 인권침해가 심각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외신들도 관련 사안을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AP통신은 캄보디아 당국이 지난 7월 대대적인 사이버범죄 단속을 벌여 한국인 57명을 한꺼번에 검거했다고 타전하기도 했다. 지난 2월 포이펫 지역의 범죄 단지에서도 한국인 9명이 체포됐다.
박항서 전 감독, 빅뱅 승리…과거 캄보디아 발언 재조명
한편 이번 논란이 계속되자,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과 빅뱅 승리의 캄보디아 관련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박 전 감독은 지난해 3월 SBS 예능 프로그램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출연해 아내와 함께 납치될 뻔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베트남 독립기념일에 3박 4일 휴가를 받아 아내와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왔다”며 “베트남 공항에 도착하니 밤 11시였고, 택시가 없어 두리번거리는데 한 젊은 친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택시에 타자마자 음악 소리부터 이상했고, 기사가 내 지갑을 보며 한국 돈과 베트남 돈을 바꾸자고 했다”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집 가는 길에서 산길로 빠지더라. 멈추라 해도 비포장도로로 계속 달렸다”고 회상했다.
박 전 감독은 “공터에 차가 멈추자 ‘끌려왔구나’ 싶었다. 아내에게 침착하자고 했는데, 그곳에는 10명 정도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며 “그중 한 명이 ‘미스터 박? 박항서?’라고 하더라. 말은 다 못 알아들었지만 ‘박항서인데 왜 데려왔느냐, 빨리 보내라’는 식이었다. 결국 대장 같은 사람이 와서 우리를 차에 태워 보냈다”고 설명했다.

'버닝썬 게이트'로 실형을 선고받아 연예계에서 퇴출된 빅뱅 출신 승리의 과거 캄보디아 발언도 재조명됐다. 지난해 초 승리는 캄보디아의 한 클럽 무대에 올라 "내가 지인들한테 캄보디아에 간다고 했더니 위험하지 않냐고, 국가가 잘 살지도 않는데 왜 가느냐고 하더라"라며 "X이나 먹어라, 그리고 닥치고 여기 와서 캄보디아가 어떤 나라인지 보라고 말할 거다,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국가인 캄보디아를 말이다"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해당 영상의 배경에는 'Prince Brewing'이라는 문구와 'Prince Holdings' 로고와 유사한 문양이 노출돼 일부 누리꾼들은 “승리가 캄보디아 프린스홀딩스 계열 행사에 참여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린스홀딩스는 최근 외신을 통해 리딩방 사기, 불법도박, 납치 및 감금 등 각종 사이버 범죄의 온상인 '태자단지'를 운영하는 주체로 알려진 곳이다.
‘Prince Brewing’은 프린스홀딩스 산하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다만 현지에서는 단순한 양조장 겸 펍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승리와 프린스홀딩스 간의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