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농업 구조개혁, 생산 효율성·농가 복지 ‘두 토끼’ 다 잡아야”

2025-08-18

국회가 이달 초 여야 합의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농어업재해대책·보험법을 포함해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했던 농업 4법이 모두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우리 농업은 농가 고령화와 쌀 과잉생산, 미국의 농축산물 개방 압박 등의 위기를 극복하고 농업 생산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18일 “세계 경제와 통상 환경의 급변 속에서 한국 농업은 구조 개혁과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면서 “고령 농업인의 은퇴 지원 등 농업 복지 정책과 스마트팜 활성화 등 산업의 효율성이라는 두 축을 든든하게 세우는 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농가의 자기 책임에 기반한 경영 위험 관리에 방점을 두면서 농업인의 선택과 참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세계 농업정책의 방향”이라며 “세계의 흐름을 보면서 한국형 농업 경영 안전망을 짜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농업 4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과제들이 남았나.

△이번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양곡법과 농안법은 역대 최고 수준의 가격·소득·경영 안정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다. 전제 조건 등을 기존 법안보다 강화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법안 운용 방향에 따라 농업정책이 자칫 ‘보호 농정’으로 퇴화할 수 있다. ‘책임 농정’이 이뤄질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단순히 돈 퍼주기 정책이 아니라 농민의 자조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법 운용 방향이 계획·의무 지향적이어서는 안 된다. 인센티브 부여를 통해 자율성을 높이고 정책 간 연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지나친 보호 농정으로 운용할 경우 정책 지속성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양곡법 통과로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것은 아닌가.

△선제적 수급 조절 정책의 효과에 따라 예산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 때 거부된 법안의 경우 1조 4000억 원 규모의 재정 부담이 추정됐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정부는 쌀 수급 균형을 위한 ‘양곡 수급 계획’을 미리 수립해 ‘양곡수급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타 작물 재배 지원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했다. 이런 선제적 재배 면적 감축 노력의 성공 여부에 예산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농가는 고령화와 쌀 소비 감소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농업인의 고령화로 농업 종사 기간이 길어지면 다른 농산물에 비해 수익이 보장되는 쌀 생산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 쌀 생산 농가의 경영주 연령은 80% 가까이가 60세 이상이며 50세 미만은 6%대에 불과하다. 고령 농업인의 장기 농업 종사는 토지 등 농업 자원의 장기 보유와 유동성 저하로 이어진다. 급속한 농업 노동력의 고령화 진행은 고령 농업인의 장기 농업 체류와 쌀 농업 집중, 농업 자원 유동성 부족과 가격 경직화, 농업인 세대 전환 지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한국 농업의 효율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농업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령 농업인의 경영 이양을 촉진해 농업 인력의 세대 전환을 안정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은퇴를 희망하는 고령 농가의 농지를 새롭게 농업 진입을 원하는 청년에게 이양하는 방안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적절한 농업 인력 세대교체는 한국 농업의 근본 과제이며 고령농의 쌀 생산 집중을 완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경영이양직접지불제도와 같은 인센티브를 통해 고령 농업인의 은퇴와 농업 자원·자산의 순조로운 이양을 유도하면 한국 농업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정부가 양곡법을 개정하면서 전략작물 전환 지원 예산을 2000억 원 증액했다.

△논에 벼 대신 논콩이나 밀 등을 재배하는 농가에 지원금을 주는 전략작물전환직불금제도는 선제적 벼 수급 관리를 위한 핵심 정책 수단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올해 배정된 예산 2440억 원에 20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전략작물 전환 직불금은 사전적 예측에 어려움이 따른다. 시행 과정에 정부와 국회·농민이 긴밀히 협의하고 조정해 장기적으로 목표치를 추구해야 할 사항이다.

-정부가 스마트팜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일본의 4분의 1에 그치는 등 선진국 수준보다 크게 뒤떨어져 있다.

△필지당 규모가 영세한 지금의 우리 농지 구조는 스마트·정밀 농업 기반의 기계화 영농 시대와 맞지 않다. 스마트팜 육성을 위해서는 좁은 농지에서 생화학재를 사용한 생산성에 의존하는 영농에서 벗어나 일정 규모의 농지에 디지털 기술 기반의 기계 투입으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을 산업의 효율성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노동력 부족 시대에 기계화된 스마트·정밀 농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기업의 농업 참여가 스마트팜 확산에 중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2+3 전략’ 등으로 기업의 농업 참여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완화해야 한다. 농업인은 ‘농지’와 ‘노동’ 등 두 가지 요소를 맡고 기업은 기술·자본·시장 등 세 가지 요소를 담당하는 전략이다. 간척지의 효과적 활용도 필요하다.

-농업에도 산업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우리 농업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고령 농가의 은퇴 지원이라는 복지 문제와 함께 산업의 효율성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농업 취업자는 145만 명 수준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농업인은 각각 30만 명과 67만 명, 독일도 50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농업인은 인구 2억 명을 훨씬 넘은 유럽의 세 나라 전체 농업인 숫자와 비슷하다. 농업인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은 제한된 재정으로 펼치는 정책에서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한국 농가의 고령화 추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은퇴도 어려운 한국 농업인은 기계 경영이 쉽고 정책 대상 중심 품목이라는 점에서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쌀 생산에 집중하게 된다. 고령화로 농업 자원 장기 보유가 이어지면 쌀 농업 집중과 가격 경직화, 농업인 세대 전환 지체라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경영 이양 직접 지불을 통해 고령 농업인의 은퇴 지원 등 복지 정책과 함께 농지은행제도 활용, 기업 자본 도입 등과 같은 구조 개혁을 적극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쌀 가격 하락 시 정부가 자동 매입에 나서면 농민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줘 감산보다 증산을 선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개정안은 정부 재량권을 기존보다 더 보장했다. 사전 수급 조절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하락했을 경우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이 아닌 수급관리위원회가 심의한 수급 안정 대책을 정부가 이행하는 방식이다. 벼 수매를 위한 쌀값 기준 등 수급 안정 대책은 이후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농안법에 따르면 수급 계획을 사전에 조정해야 하고 수급조절위원회 심의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인의 자조 노력을 유도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자조 조직 육성 움직임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쌀의 농협 중심 유통 체계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사전에 가격을 정해 사들이는 현 매취 사업 방식의 벼 유통 구조에서는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등의 역할 확대가 불가능하다. 그나마 농협RPC는 금융 사업 수입으로 손실을 보충하면서 유지해나가고 있다. 쌀 유통도 과수처럼 생산자와 RPC 상호 합의에 의한 수탁 거래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미 통상 협상에서 사과와 배 등 과채류 수입 승인 절차를 전담하는 데스크 지정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과채류 수급 문제는 기존 곡물 중심의 식량안보 접근에서 추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한국은 기후변화로 재배적지 변동 등 불안 요인이 가중되고 있다. 과채류 수입 문제는 기존의 우량 종묘 공급 계획 등 과채류 장기 공급 계획과 균형을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 품목별 적지 발굴, 품종개량 등을 고려해 품목별 수입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농산물 시장 완전 개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국은 거대 곡물 수입국 중 하나다. 하지만 변변한 국제 조달 능력을 갖춘 곡물 기업이 하나도 없다. 큰 수입 시장을 대부분 외국 기업에 맡기면서 국내 자원 보존·활용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식품 수급에 취약하다. 과일·채소 수급 불안 우려도 적지 않다. 식량 수입국의 식량안보 수단은 자급률 제고 등 생산과 비축·수입 등 다양하다. 국제무역을 통한 안정적 농식품 확보를 생산 보호만큼 중요한 국가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국내 생산과 비축 역량의 한계를 감안하면 수입 제도 개선도 매우 중요하다. 식량안보 관점에서 장기 계획을 수립해 수입 제도를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He is

1961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부산 경남고와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를 지내고 있다. 정부 통상자문위원회, 재정사업평가 자문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 및 농어업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농어촌공사와 농협경제지주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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