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은 우리가 그걸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어.”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다잉>은 ‘죽음’ 교향곡과 함께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이지만, 결코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주인공 ‘톰 루이스’(라르스 아이딩어)가 ‘죽음’ 교향곡의 지휘봉을 잡은것처럼, 고통스런 삶이라도 그 방향타를 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 자체가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잉>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소적이면서 이중적이다. 영화는 죽음이란 비극이 아니라 해방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에 대한 희망도 놓지 않는다. 다섯 개의 챕터로 꾸려진 영화는, 각 챕터마다 가족 구성원 중 하나의 시점을 택해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삶을 비춘다. 가족의 비극과 죽음을 다룬 3시간가량의 긴 영화이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 덕분에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첫 챕터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신의 배설물을 쥐고 있는 톰의 엄마 리시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웃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도 잠시, 남편 제러드가 나체로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제러드의 기행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제러드는 파킨슨병으로 기억을 잃고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지만, 그를 돌봐야 할 리시는 암과 당뇨병으로 병마에 시달린지 오래다. 부부는 서로의 병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다.
병간호가 버거워진 리시는 아들인 톰과 딸 엘렌에게 연락하지만, 자식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톰은 전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에게 신경을 쓰느라 가족은 뒷전이다. 베를린으로 떠난 엘렌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다.

다음 챕터로 넘어간 영화는 리시가 주저앉아있던 시간, 톰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일하는 톰은 자신의 친구 베르나르와 함께 ‘죽음’이라는 제목의 교향곡을 준비한다. 일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며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베르나르 옆에서 톰은 어떻게든 공연을 완성하려 노력한다. 이런 와중에 아이의 탄생을 가까이서 맞이하고,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부모의 연락이 교차한다. 톰과 리시가 서로를 향해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은 정적이지만 강렬하다.
한국인 첼리스트 역의 미도를 독일에서 첼리스트로 활동 중인 한국인 박새롬이 맡은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그는 톰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이자 작곡가 베르나르의 연인을 연기한다. 특히 오케스트라가 교향곡을 연주하며 극이 정점에 다다르는 영화 후반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다잉>을 연출한 매티아스 글래스너 감독은 가족간의 갈등과 죽음을 담은 각본에 자전적 경험을 담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영화가 “나는 왜 죽어가는 부모님을 사랑할 수 없고 그 과정을 회피하게 되는가에 대한 물음에 빠져 시작됐다”며 “극작의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는 일종의 실험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접근법을 담은 영화”라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제74회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인 영화는 은곰상 각본상, 심사위원상, 길드필름상을 수상했다.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시상식인 독일 영화상에서도 최고상인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음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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