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가 오묘하고 위험하다. 세계 주요 각국은 고도의 전략전과 대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분열된 세계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 중·러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 제3세계의 남방 세력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고, 상황은 보다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국제정치의 갈등 해법인 윈윈을 넘어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려는 대회전이 진행 중이다.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 붕괴는 생존을 국가 최상 목표로 설정해야 하는 정글 같은 환경을 만들어놓았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멈출 수 없이 폭주 중인 미친 말과 같다. 전쟁은 더욱 커지고 있고, 참전 행위자의 수도 확대되고 있다. 어느 지도자도 이 전쟁을 멈출 수 없는 국면이다. 전쟁을 멈추는 지도자는 국내적으로 심각한 정치적 곤경에 처할 개연성이 크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나, 러시아의 푸틴은 이 기회를 활용하여 현상변경을 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설정한 최종 상태가 모호하고, 진화 중이란 점이다. 그 결과로 2025년 제3차 세계대전의 발생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것은 단순한 빈말이 아니다. 그 물꼬가 한반도일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자신이 두 전쟁을 종식하겠다고 언명했지만, 트럼프는 이들을 만족시키거나 설득할 수단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의 의지대로 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다. 각국은 고도의 촉각으로 물밑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국민적 공감대 필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참전 소식은 이 과정에서 제기되었다. 사실이라면, 북한의 참전은 제3국이 러·우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푸틴의 전략적 목표는 예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현 상황을 냉전적 시각에서 해석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구도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 냉전적 대결이야말로 북한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 핵무장은 기정사실화되고, 경제발전을 위한 지원은 물론 행동의 자유를 획득한다.
중국은 이러한 북한의 행태를 위험스럽게 바라본다. 중국은 중장기적인 미국과의 전략경쟁에서는 승리할 자신이 있다. 다만, 미국과 단기적인 충돌이나 불안정성의 확대는 중국에 불리하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도발과 군사적 충돌은 연루의 위험성을 제고하면서 중국의 핵심이익을 위협한다. 최근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사치품 수입을 차단하고, 중국 내 북한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을 몰아내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중 수교 75주년인 올해 양자관계를 최악의 감정적 대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중국 대신 러시아와 준군사동맹 상태에서 혈맹관계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군사기술, 에너지, 광물, 경제 지원은 물론 유사시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군사적 도발은 미국과 일본 정부를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인 카드가 되고, 중국을 심각하게 압박한다. 북한의 강공은 다목적적이면서, 외교 카드를 크게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을 추구해왔다. 중국은 이 세력균형의 추가 점차 한국에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일방적인 비자 면제 조치도 이러한 노력으로 보인다. 중국이 ‘전략적 방어’에서 ‘능동적 방어’ 외교안보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 각국 다차원적 ‘수싸움’ 치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중국과의 전략경쟁 그리고 미국 이익 위주 정책과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에 더 강력한 무역 압박, 동맹 분담금의 급격한 상승, 주요 제조업 역량의 미국 회귀 요구가 폭풍처럼 밀려올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를 보다 중장기적인 전략·안보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트럼프 변수에 대한 위기관리를 위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도 한국의 안보적 역할 증대를 요구할 것이다. 일본은 그 대가로 윤석열 정부와 경제적 이익을 나누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시한이 도래하는 한·일 제7광구 대륙붕 개발협정 연장 논의도 난항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국에 유리한 법리적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상의 일본 전문가들을 배치하였지만, 이러한 일본을 설득할 개연성은 극히 적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최대한으로 공들였던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가 한국의 안보와 경제이익이 증진하는 실제적인 결실을 가져왔는지는 의문이다. 대신 러시아와는 거의 적대 상태에 돌입하였고, 중국과의 신뢰와 교류는 수교 이래 가장 저점에 다다랐다. 남방외교의 참패도 뼈아프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한국의 공급망과 경제안보는 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향후 한국의 안보·경제 상황은 천애의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외교안보·경제적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요망된다. 내부적으로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 어떠한 강대국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현 국면은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스캔들, 리더십과 정치역량의 부족으로 국민 지지도가 10%대로 내려간 상황이다. 이 상태에서 대북 외교안보적 강공책으로 남은 역량을 소진하는 것은 그야말로 악수이다. 현재로서는 정권이 아닌 국가의 생존을 위해 국제정치 상황을 면밀히 관찰·분석하고, 행동을 신중히 하면서, 국민들의 공감대 확대 등 역량을 점검·증진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만큼 당대 국제정치는 변수도 많고 불확실성도 크다. 당장의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독일, 프랑스 등이 수사와는 달리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