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통신] “고려인의 후손이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2024-10-21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카자흐스탄을 공식 방문해 양국 간의 전략적 협력과 의회 간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고려인 동포간담회를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동포사회를 격려했다.

이번 방문은 우 의장이 국회의장으로서 처음으로 떠난 해외 순방이다. 우 의장은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물론이고 마울렌 아쉼바예프 상원의장 및 예를란 코샤노프 하원의장을 만나 양국 간 무역, 에너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하고 글로벌 도전에 함께 대응하며,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길 희망했다.

특히, 11일 알마티에서 열린 동포간담회 에서 우의장은 "고려인의 후손이 한국의 국회의장이 되었다고 보고하려고 가장 먼저 카자흐스탄에 왔습니다"면서 자신의 첫 해외순방지로 카자흐스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참석한 동포들의 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우의장은 스탈린이 연해주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독립운동가 김한의 외손자이다.

우 의장은 이날 간담회 분위기가 무르익자 "양국 관계를 '백발백중'시키자"면서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위하여, 백발"을 선창했고, 참석자들은 "백중"을 세 차례 후창했다. 이 건배사는 "홍범도 장군이 호랑이를 잡는 포수였는데 사격을 아주 잘했다"면서 '백발백중' 건배사는 자신이 최근까지 이사장을 지낸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에서 사용하는 구호에서 따왔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아울러 우 의장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관계를 개척하고 있는 분들이 바로 고려인"이라며 "동포들의 헌신과 노고가 더 큰 성취로 돌아오도록 국회에서도 잘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동포간담회는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갔고, 간담회에 참석한 하지 못한 동포들은 “동포들의 헌신과 노고가 더 큰 성취로 돌아오도록 국회에서도 잘 뒷받침하겠다”는 우의장의 약속이 고려인 사회의 숙원들 중의 하나인 누구나 동포비자(F4)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실현될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고려인 40%에 방문취업 비자…재외동포 비자로 단일화해야"

많은 고려인들은 유학이나 일자리를 찾아서 모국으로 향하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시작된 2014년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일자리를 찾아 모국으로 향하는 고려인이 급증했다.

현재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고려인 인구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자연증가분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국외로 유출된다는 말인데 이들 중 한국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일하게 고려인 동포들이 늘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비록 매년 포브스지 선정 상위 50대 부호 명단에 7명씩 이름을 올리는 등 성공한 고려인들을 많이 배출하지만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주변국 고려인 동포사회와 마찬가지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행을 원하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경제적 상황이 낫기 때문에 한국행의 압력을 덜 받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유학과 구직을 위해 한국행을 원하는 고려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현안은 뭘까? 이들은 비자 문제를 첫 번째로 꼽고 의사소통과 의료지원 문제를 그다음으로 꼽는다. 이러한 현실은 지난 5일, 고려인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 현장조사를 나온 충북도 의회 의원단이 주최한 ‘타슈켄트 고려인 동포 간담회’ 시간에 다시 한번 명확히 드러났다.

차 스베틀라나 타슈켄트 주 치르칙 시의원은 우즈벡 고려인들은 동포비자(F4)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방문취업비자(H2)를 받아서 나간다는 현실을 말했다. 그녀는 "고용이 불안정한 H-2 비자를 가진 고려인 동포들은 사회 안전망에서 소외돼 생계와 삶의 질이 위협받는다"라며 "재미동포처럼 모든 고려인 동포에게 F-4 비자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타민족과 결혼한 고려인 배우자에게 주는 방문 동거(F-1) 비자는 취업이 어렵다"라며 "저소득 고려인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해 변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에 체류 중인 고려인 동포 10명 중 4명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방문취업(H-2) 비자를 갖고 있어 불이익이 많고 동반 배우자의 경제활동이 제한됨으로써 정상적 사회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가이 알라 고려 신문 부 편집장은 비자 문제와 함께 한국인들이 고려인에 대해 동포로서가 아니라 아직도 외국인으로 대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과 언어 소통의 어려움 그리고 의료문제 등을 애로사항으로 지적했다.

이날 김 드미트리 씨는 구소련에 살았던 독일인과 유대인들은 모국으로 돌아가면 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데 비해 고려인들은 국적취득이 어렵다면서 좀 더 수월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홀대와 환대, 동포에 대한 역차별의 고리 끊고 모두 함께 미래로

중앙 아시아 고려인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고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개혁개방 정책이 맞물려 맺은 한소수교 가 체결되면서부터다.

하지만 당시 고려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었는데,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스탈린 공산정권의 억압 속에 살았던 '불쌍한 존재' 로 볼려는 경향성을 띄었고, 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고사하고 진심으로 우리 한민족의 일부라는 의식이 미약했다.

언론도 고려인들의 존재를 보도하면서 소련의 해체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과정속에서 열악해진 그들의 삶과 '강제이주'에만 포커스를 맞추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고려인을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우리 사회에 남겨놓았다.

고려인들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진지 약 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왜 그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구한 말 힘 없는 조국은 자기 백성조차 지키지 못해 결국 자기 백성들이 먼 이국 땅까지 끌려와 사는 것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이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같은 피를 나눈 고려인 동포들과 선진국에 살고 있는 동포에 대한 처우가 다른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고려인 후손들에게는 여전히 비극이다.

아타깝게도 고려인들은 같은 한민족이지만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 여전히 홀대의 대상이다. 고려인들이 환대를 받을 곳은 그어디도 아닌 조국 대한민국이지만 고려인들에게 대한민국은 아직 먼 남의 나라다.

지금부터라도 고려인에 대한 한국 내 인식의 저변이 바뀌어야하고 고려인들에 대한 현실적인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과 고려인들이 함께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어 능력 함양 지원 등으로 우리 사회 일원으로 안정적 정착 적극 도와야

최근 지방의 인구 소멸에 대한 대응책 마련 차원에서 지자체들이 고려인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이를 반영한 듯,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재외동포청이 설립된 지 1년여가 지나감에 따라 그간에 막연히 ‘측은한 동포로서 인식되던 고려인 동포’에 대한 생각에서 ‘강제이주'라는 고난을 극복하고 중앙아시아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자랑스러운 동포 사회’로 달라지고 있다. 특히나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고려인들은 독립투사의 후손들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확대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의 첫 해외 순방국으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하여 고려인 동포사회를 격려하고 국회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한 것은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논란으로 모국에 실망감을 느꼈던 고려인 동포사회를 위로하고 위상을 높여준 시기적절한 조치였다.

더불어, 동포청이 최근 해외 거주 동포들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국내에 체류하는 동포들까지도 정책 대상에 포함시키고 부처별로 분산된 동포 관련 서비스도 통합한 것은 무척 반길 일이다.

국내 이주 고려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려는 노력과 함께 기존에 동포 3세까지 해당되는 동포 개념의 획기적 확장을 포함한 동포 비자제도의 단일한 적용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김상욱 고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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