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아너’ 김재환 작가 “결국 증오나 분노보다는 사랑의 힘”

2024-09-19

적어도 김재환 작가의 최근 작품을 보면 큰 틀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최근 막을 내린 지니TV 드라마 ‘유어 아너’의 대본을 썼고, 그전에는 인기리에 방송됐던 쿠팡플레이의 시리즈 ‘소년시대’를 썼다.

한 명의 절대적인 권력자가 있고, 그를 피하려는 주인공은 스스로를 속인다. 하지만 이러한 알량한 수작은 만천하에 드러나고 주인공은 나락에 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과 위선의 혼돈 속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가장 약한 사람이다.

“‘유어 아너’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잃은, 잃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분노가 과연 정답일지, 분노하고 복수하고 아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키는 게 과연 옳을지 물어보는 작품이죠. 가장 상처를 받는 것은 가장 순수하고 선한 존재였습니다.”

‘유어 아너’ 3회에는 사고로 사망자를 낸 아들의 일을 덮으려는 송판호(손현주)가 초반 범인으로 지목됐던 이상택의 집에서 폭발사고를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이 사고로 이상택의 노모와 딸이 사망한다. 이들은 극 중 분노와 복수에 하등 관계가 없던 이들이었다. ‘소년시대’에서 장병태(임시완)는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더욱 약한 ‘찌질이’ 조호석(이상진)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호석 역시 아무 잘못이 없었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는 비극이 생겼어요. 하지만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공장에서 탄소를 내뿜고, 온실가스를 내뿜는 가해자가 아니었죠. 사모아섬처럼 아무 죄가 없는 이들입니다. 드라마는 결국 이런 비극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지, 그 작고 밝은 빛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유어 아너’는 2017년 이스라엘에서 방송된 ‘크보도(Kvodo)’가 원작이다. 2020년 미국에서도 리메이크됐다. 초반 김재환 작가와 크리에이터 표민수 감독이 집중한 부분도 이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한 인간이 겪는 아이러니, 판사는 정의를 수호하고 조직의 보스는 마냥 잔혹하다는 관념을 깨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 거기에 주연으로 송판호 역에 손현주, 김강헌 역에 김명민이 되는 순간 희열을 느꼈다.

“대본을 쓰며 집중했던 것은 날 것의 감정, 그 아버지의 감정이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둔 상태에서 송판호 캐릭터의 표현 방식을 상상에 맡겼죠. 손현주씨의 캐스팅을 듣고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겪은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이 유기체로 만들어주셨죠. 김명민씨 역시 날 것의 감정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예측했던 것보다 더욱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어요. 두 분 다 업고 동네를 돌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렇게 틀을 짜고 나서는 서스펜서 스릴러에 맞는 작법을 만들었다. ‘유어 아너’는 유독 ‘엔딩 맛집’으로 유명했는데, 10회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이었지만 매회 긴장감을 증폭하는 마무리가 있어 다음 회로 가는 동력이 됐다. 김재환 작가는 ‘상황’보다는 ‘감정’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사건을 마지막에 노골적으로 터뜨리면 감정이 먼저 터지고 그다음에 오는 것은 그에 따르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송판호든 김강헌이든 사건이 생기고 감정을 터뜨리는 엔딩을 썼습니다. 그래놓으면 시청자들은 이들이 그 감정 후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궁금하게 돼요. 사건만 제시해놓으면 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시청자들이 권태를 느끼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엔딩에서 감정을 터뜨리고 그다음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의도였습니다.”

결국 ‘유어 아너’는 두 아버지가 각각의 아들을 다 잃는 결말로 끝나고 말았다. 김강헌은 극 초반 둘째 아들 김상현을 사고로 잃고 복수심에 휘말리고, 송판호는 그렇게 지키고 싶던 아들 송호영(김도훈)의 죽음을 맞닥뜨린다. 결국 열린 느낌으로 끝난 서사에 배우들부터 시즌 2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첫 시즌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맹신하던 신념과 철학, 통념이 무엇을 망가뜨리느냐의 이야기였어요. 시즌 2는 머릿속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또 다른 형태의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좋은 작품은 늘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연이 있다면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환 작가가 ‘유어 아너’나 ‘소년시대’를 통해 세웠던 분노와 거짓, 복수의 세계관은 사실 그의 과거와도 맞닿아있다. 2011년 여러 작품이 풀리지 않아 궁지에 몰렸을 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불신에 절망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때 쓴 대본이 송해성 감독의 영화 ‘고령화가족’의 각본이었다. 작가로서 일어서는 과정 역시도 분노와 복수심은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더욱 근본적인 요소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에는 저를 절벽에서 민 사람에 대한 복수심으로 노력했지만, 그게 좋은 성과는 아닌 것 같았어요. 저를 도와주고 사랑해줬던 다수의 주변인들에게 좋은 사람이 돼보자고 썼던 책들이 잘 됐어요. 결국 증오나 분노의 힘보다는 사랑의 힘이 좋은 성과를 만듭니다. ‘유어 아너’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나신다면 언제든 ‘유어 아너’를 정주행해 보신다면 매번 다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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