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는 기업·노동계·전문직 출신 인사들을 장관으로 대거 기용했다. 현장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분명 국가적 자산이다. 다만 각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장관에 대해 ‘우리 사람’이라는 의식을 드러내며 요구를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장관을 특정 집단의 대변자로 규정하는 순간에 국정은 방향성을 잃고 흔들릴 수 있다.
전문성이라는 자산이 오히려 이해관계의 굴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각국은 현장을 알거나 전문성이 있는 인사를 장관을 기용할 때 비슷한 구조적 위험을 경험해 왔다. 대표적 사례가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다. 그는 1960년 포드자동차 사장으로 일하다 1961년 케네디 행정부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경영기법·시스템 분석을 국방에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업계식 효율성 사고가 국가 전략의 복잡성을 단순화해 베트남전 확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아직도 존재한다. 전문성은 국정의 자산이지만 업종의 경험에 기반한 사고방식은 국가적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국의 프란시스 오그레이디 사례도 의미가 크다. 영국 최대 노조인 TUC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2022년 상원의원으로 임명됐다. 초기에는 노조의 대리인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영국의 제도는 이런 우려와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고위 공직자가 이해관계자와 접촉하면 일정·참석자·의제까지 기록·공개하는 투명성 등록부(Transparency Register)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면담 일정, 참석자, 논의 의제까지 모두 기록·공개된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과의 거리 두기를 위해서다. 민간 출신 인사의 전문성이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기반의 핵심이 공적 책무 선언(Public Duty Declaration)이다. 영국·뉴질랜드·호주 등 영연방 국가의 장관은 취임 직후 다음을 선언한다. “나는 개인적·직업적·조직적 이익이 아니라 오직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I serve the public interest, not any personal, professional, or organisational interest).” 이 선언은 각료 행동강령(Ministerial Code)과 노런 원칙(Nolan Principles, 1995)에 명문화되어 있다. 각 각료는 공적 책무에서 최고수준의 독립성과 정직성을 유지해야 하며 위반 시 의회 보고와 감사 대상이 된다. 공직자는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이 선언을 반드시 수행하고 위반 시 의회·감사위원회의 감사를 받는다. 즉, 이 선언은 장관이 ‘업계의 사람’이 아니라 ‘국가의 사람’임을 제도적으로 보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장치가 여전히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기업 출신 장관은 규제개혁·산업정책에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판에 휘말릴 수 있다. 노동계 출신 장관은 협상력에 강점이 있지만 기존 노조와의 거리 두기에 실패하면 정책의 중립성을 잃을 수 있다. 전문직 장관 또한 직역단체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장관의 능력이 아니라 장관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과 제도적 장치의 부재인 것이다.
한국도 업종 출신 장관의 전문성을 국정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이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공적 책무 선언을 한국형으로 도입해야 한다. 장관·차관·위원장 등 주요 공직자는 취임 즉시 공공성 선언을 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이해관계자 접촉 공개제도를 도입해 면담·의제·참석자를 철저히 기록·공개해야 한다. 투명성은 논란을 줄이고 장관을 오히려 보호한다. 셋째, 장관 평가는 산업계나 노조의 만족도가 아니라 국가 생산성 지표(예를 들어 투자, 고용, 혁신성, 규제개선 효과)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문가 장관의 전문성이 공공성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 노조, 직역단체 모두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업계나 단체가 자기 분야 출신 장관을 ‘우리 사람’으로 기대하는 순간 장관은 방어적으로 바뀌고 오히려 정책 공간은 좁아진다. 심지어 꼭 필요한 정책 추진도 외부 여론의 부정기류에 막혀 한 걸음도 못 나갈 수 있다. 이해관계자 전체가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요구 중심이 아닌 정보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요구·청원 중심의 접근은 장관의 부담만 키운다.
전문가 장관일수록 기업이 산업 구조·국제 규제·기술 변화 데이터 등 고품질의 정책정보가 필요하다.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은 정책의 품질을 높이는 존재가 되지만 단순 요구를 반복하는 기업은 오히려 거리를 두게 만든다. 둘째, 기업 이익이 아니라 산업 생산성을 기준으로 제안해야 한다. 특정 기업의 이익을 앞세우면 오히려 장관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산업 전체의 생산성·투자 확장·기술 경쟁력 기반의 제안은 장관의 공적 책무와도 일치하며 정책 추진력을 높인다. 기업이 산업의 언어로 말할 때 정책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셋째, 장관의 공적 책무를 존중하는 건전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장관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과도하게 앞세우면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되고 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영국식 투명성 제도는 장관뿐 아니라 결국 해당 이해관계자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미 통상 협상, 안보 환경, 내부 갈등, 제조업 공동화 등 이전보다 훨씬 큰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사회의 기업, 노동, 전문직 단체와 같은 사회의 각 세력들이 서로를 아끼고 협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업종·단체 출신 장관은 이런 시기일수록 그 전문성을 국정에 녹여낼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들을 특정 집단의 사람이 아닌 국가의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전문가 장관의 전문성을 공익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한국은 위기 속에서도 성장의 질을 높이고 안정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것이 각 집단이 장관에게 기대할 유일한 공통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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