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립주의' 선언 트럼프 "전세계 미군 재조정"…주한미군도 영향 받나

2025-12-07

미국이 지난 5일(현지시간)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첫 국가안보전략서(NSS)는 1기 때의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고립주의 성향이 강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NSS는 기본적으로 미 본토 방어에 집중하되 대만 문제 등 자국의 경제 패권 유지와 관련한 지역 현안은 ‘동맹들의 기여와 비용으로’ 공동 대응하겠다는 암시도 남겼는데, 한국에는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과 대중 견제 동참 압박이 거세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서반구가 우선…세계 군사 주둔 재조정"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청사진을 담은 이번 NSS는 33쪽 분량으로,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의 귀결(Trump Corollary)”에 따른 “비개입주의”(Non-Interventionism) 등의 원칙을 나열한 게 핵심이다. ‘먼로 독트린’은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이 1823년 의회 연두교서에서 밝힌 외교 정책으로, 미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는 걸 골자로 한다. 이 때로 되돌아가겠다는 건 중동·유럽 등 전통적인 분쟁에선 발을 빼는 대신 미 본토 인접국의 불법 이민·마약 카르텔 대응에 안보 자원을 집중 배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NSS가 지역별 안보 문제의 최우선 순위에 미 대륙을 포함하는 ‘서(西)반구’를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2017년 12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NSS에서 서반구 문제는 5번째였다. 특히 NSS는 이와 관련 “우리 반구에서의 긴급한 위협, 특히 이 전략에서 언급된 임무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군사 주둔(our global military presence)을 재조정”할 것임과 동시에 “최근 수십 년 또는 수년에 걸쳐 미국 국가 안보에 대한 상대적 중요성이 감소한 전구들에서 철수(away from)하는 것”을 명시했다.

특히 NSS가 아시아 전략에서 한·미 동맹과 함께 “적대 국가를 억제하고 제1도련선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능력을 포함한 역량 강화”를 거론한 건, 주한미군 숫자는 조정하되 대중 견제 역할을 겸하는 첨단 자산의 배치는 늘리는 쪽으로 임무를 변경할 것이란 국내외 관측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미국은 조만간 국방전략서(NDS)와 해외 주둔군 검토(GPR) 등도 발간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해당 전략서에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세계 주둔 미군 재조정·재배치의 밑그림이 담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더이상 아틀라스 아냐"…韓안보 분담 요구

단 NSS는 “미국은 어떤 국가도 우리의 이익을 위협할 정도로 지나치게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동맹국 및 파트너와 협력하여 글로벌 및 지역 세력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도 했다.

동시에 “미국이 아틀라스(그리스 신화에서 천체를 떠받치는 거인)처럼 세계 질서 전체를 짊어지던 시대는 끝났다”며 동맹국과 파트너들에게 지역 안보 분담을 요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군사 동맹 등의 무임승차”를 “용납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다”면서다.

결국 동맹국들이 자체 국방력을 강화해 역내 재래식 억제 역할을 맡아 달란 뜻이다. 아시아 지역에 대해선 “미국은 제1도련선 어디에서든 침략을 저지할 군대를 구축할 것이지만 미군이 단독으로 수행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했는데, 이는 미국의 주요 반도체 공급처인 대만에 대한 보호를 골자로 대중국 견제 기조는 이어가되 ‘동맹국의 비용과 손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에는 국방비 지출을 늘려 한국군 주도의 대북 억제력 증강은 물론 대중 견제 역할까지 겸하란 요구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급물살을 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 문제와 관련한 직접 개입은 줄이되 1도련선에서 반드시 봉쇄해야 한다는 매파적 시각과 중국의 세력권 인정 가능성이 동시에 제시되는 등 NSS 전반에 전략적 메시지가 혼재돼 있다”면서도 “"미국의 역할 축소와 동맹 부담 증대라는 방향성이 읽힌다"고 평가했다.

미·중 목표서 빠진 북한 비핵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 선택적 개입’ 기조를 NSS에 명시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n the Korean Peninsula)’이란 표현이 빠진 건 우려되는 대목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모든 위협 평가와 정책 방향이 미국 본토를 기준으로 재편돼 있는 이번 NSS에서 북한 문제가 빠진 건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더 이상 자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아니란 의미일 수 있다”라고 짚었다.

동시에 이번 NSS에선 “유연한 현실주의” 원칙에서 “통치 체계와 사회가 우리와 다르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명시했는데, 이는 기존 국제 질서에서 벗어난 불법 핵 개발 국가인 북한과도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핵 고도화가 본격화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권(2012년) 이후 미국의 NSS에서 북한 또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가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중국도 지난달 27일 발표한 군축 백서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해결의 키를 쥔 미·중이 동시에 북한 비핵화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북핵의 사실상 용인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롭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대리는 6일(현지시간) SNS를 통해 “이번 NSS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의 누락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과 일본에서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북한의 잠재적인 오판을 부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서울=신경진 특파원, 이유정·박현주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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