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아도…A급과 똑같이 판매돼야”

2025-03-16

당도로 획일화된 과일 기준

생산과정 무시…결과만 평가

탄소배출 줄이는 ‘유기농업’

지속 가능한 농업 위한 대안

온라인 과일 판매처인 ‘공씨아저씨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맛있는 과일의 비법은 없습니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상식을 지킬 뿐입니다”라는 문구가 손님을 맞는다.

공씨아저씨네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과일을 판다. 소비자에게 주문을 받고, 과일이 잘 익었을 때 수확해 보낸다. 크기와 모양으로 과일을 선별하지 않는다. 매끈하고 큰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 농사를 짓고, 대목에 맞춰 물량을 쏟아내는 시장 관행을 거스른다.

14년간 과일가게를 운영한 공석진씨가 최근 <공씨아저씨네, 차별없는 과일가게>(수오서재)를 냈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한 공유사무실에서 만난 공씨는 “‘맛있는 과일=당도 높은 과일’이란 공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며 “과일 맛을 완성하는 데는 본연의 향과 식감도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맛있는 과일의 기준을 당도로 획일화하면 농업 생태계도 달라진다고 했다. “(단맛이란) 결과 중심으로만 모든 걸 평가하면 과정이 무시되고, 친환경 농산물인지 일반재배 농산물인지는 관심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당도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농가들은 밭에 폴리에스테르와 알루미늄 등으로 이뤄진 반사 필름을 깔기도 한다.

과일을 포장하며 생기는 쓰레기를 보면서 ‘내가 파는 것이 과일인가, 아니면 쓰레기인가’ 되물었다. 그는 “반성문을 쓰는 느낌”으로 스티로폼 상자와 플라스틱 포장재를 종이로 바꿨다.그는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가 유기적으로 함께 노력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상기후의 시대, 농업은 더 위태로워졌다. 공씨는 “최근 4~5년 여름 날씨의 변화가 과일가게의 존폐를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1년 매출의 절반 가까이 담당했던 자두와 복숭아 같은 ‘여름 과일’의 수확량은 반 토막 났다”고 했다. 또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번진 탄저병은 가을과 초겨울 사과 농사에 피해를 주고, 비로 질퍽해진 땅은 봄철 토마토를 심는 데 영향을 준다”며 “겨울이 따뜻하면 이듬해 병충해가 더 커진다. 마치 ‘연쇄 부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공씨가 친환경 농가와 거래하는 이유는 유기농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해 농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화석연료로 만든 화학비료는 토양을 파괴하고 지하수나 강으로 흘러가 물에 사는 생명체들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 논리가 농민들이 친환경 농업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크기가 작은 데다 벌레 지나간 흔적까지 있는 유기농 과일은 커다랗고 흠 없는 과일에 밀려 제값을 받지 못한다. 공씨는 “지금 유기농가들은 손해를 보고 농사를 짓고 있다”면서 정부의 수익 보전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씨는 “싸게 수입한 농산물 가격이 영원히 쌀 것이란 생각은 금물”이라고 했다. 자국 농업이 사라지고 시장을 장악당하면 수입 농산물 가격이 다시 오르는 게 ‘뻔한 순서’라는 것이다.

공씨는 “도시 사람들은 농사를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긴다”며“하지만 지난해 말 남태령 사건은 농민과 농업에 시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연대한 첫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과일 판매 전략이 농민운동이나 환경운동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요한 건 맛, 그리고 소비자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는 “‘못난이 농산물’만 따로 판매하는 곳도 있지만 ‘못난이’가 ‘A급 농산물’과 똑같이 판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소수자를 배제·고립시키지 않고 사회에서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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