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언니는 첫 남친 생겼다…“30만원만” 5일뒤 터진 비극

2025-12-02

언니의 유품을 정리해 달라는 동생의 의뢰였다.

고인은 40대 초반 여성이었다.

10여 일 만에 발견됐다. 번개탄이었다.

“언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어렸을 때부터요.”

세 살 터울 동생은 그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매는 같은 초·중·고를 연달아 다녔다.

부모도 선생님도 같았다.

낳고 기르고 가르친 분들을 공유한 자매.

그런데 그 언니에게 동생은 모종의 ‘부채감’을 느끼며 자랐다고 한다.

“언니는 알바를 해서 돈을 벌었어요.

길어봐야 두세 달.

사람을 상대하는 걸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돈이 필요하니까.

어거지로 몇 달을 일해 돈을 모으면 쉬고.

그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하고….”

모든 걸 공유하며 자란 동생과도 전화 통화는 힘들어했다.

사람과 말을 한다는 일.

즉석에서 응답해야 하는 모종의 의무.

언제 끊어야 할지 몰라서 오는 부담감.

머리를 굴리고 성대를 세워 온 힘을 다해 예측 불가능한 대화에 참여한다는 일 자체가 버거웠다.

그나마 카톡은 편했다.

당장 답을 안 해도 되니까.

한참 뒤라면 다른 말을 해도 되니까.

고교 졸업 뒤 자매와 가족의 ‘대화’는 드문드문 카톡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사람을 접하는 게 힘들다는 언니는 고교 졸업 뒤 바로 독립해 혼자 살았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그 대하기 힘들다는 ‘사람’에 피붙이도 포함된다는 걸 깨닫곤 섭섭했다. 섭섭함을 느낀 뒤로 한참을 지나, 어느덧 너무 미안했다. 가족 관계도 그렇게 힘든 언니에게 삶이란 얼마나 가시밭이었을까.

어쨌든 언니랑은 따로도 가족 단톡방으로도 드문드문 소식을 전하며 살았다고 한다.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 외에, 사실 모든 성인 가족들이 다 그렇다. 이상할 건 없다.

부모님은 젊은 시절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부지런한 분들이셨다.

줄곧 맞벌이였고 늘 바빴지만, 그 덕에 경제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적당히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했다.

적당히 화목….

그게 과연 그 가족에게 적당한 표현일까.

“언니는 엄청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말썽 피운 적도 없고.

엄마가 정해준 대로 행동하는 착한 딸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엄마도 고교 졸업 뒤 독립을 허락해준 것 같아요.”

원룸은 부모가 얻어줬다.

조용하고 치안도 안전한 동네에 깔끔한 방.

그런 언니를 보고 동생은 너무 부러웠단다.

자기도 대학 가면 바로 따로 나가 살겠다고 보챘지만, 세 살 터울 동생이 독립한 건 서른이 다 돼서였다.

종종 얼굴을 맞대지도,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하는 그 기묘한 ‘가족 관계’는 20년 넘게 이어졌다. 처음엔 너무 이상했지만 익숙해져 갔고, 카톡이 보편화된 이후엔 되레 바쁜 세상 다들 그러고 사나 보다 싶어 무감해져 갔다.

어쨌든 서로 카톡은 줄곧 이어졌던 모양이다.

언니의 생활은 늘 단조로웠다.

오래가지 못하는 단속적 알바의 연속.

하지만 그래도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많았단다.

“뜨개질을 잘했어요.

손재주가 있어 만든 걸 종종 선물로 줬어요.

근데 멀리 살지도 않으면서 꼭 택배로 보낸다니까요.

나오기 싫은 건지 나를 만나기 싫은 건지….”

그 정도 솜씨면 가게를 내도 되겠다 싶었단다.

알바를 그만두고 공방을 차려보라고 권해도 봤는데, 사람 상대에 자신이 없다며 매번 질색했다고 한다.

온라인 판매라도 하면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그냥 모르는 사람을 마주치는 게 싫다고 했다. 싫은 건지 무서운 건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러다 최근 몇 달간 언니가 이상해졌다고 한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뀐 거예요.

어떤 남자의 뒷모습이었어요.

그런 건 처음이었어요.”

궁금해서 물어보니 기가 막힌 답변이 돌아왔다.

“남자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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