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 축소한 숫자의 마술···상속세 등 ‘기타’가 74%

2024-10-19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지난 10~11일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획재정부가 ‘부자 감세’를 감추기 위해 작위적인 기준을 동원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기재부는 올해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등을 포함한 세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서민·중산층 감세효과(-6282억원)가 고소득층 감세효과(-1664억원)보다 4배 가까이 크다고 발표했는데요. 이 수치에 고소득층 감세효과를 적게 보이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숫자의 마술’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74.1%, 이런 ‘기타’ 본 적 있나?”

첫 번째 논란거리는 기재부가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속세 개편 효과를 ‘기타’로 분류했다는 것입니다. 기재부는 매년 세법 개정안과 함께 ‘세 부담 귀착효과’를 발표합니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서민·중산층, 고소득층, 중소기업, 대기업 등 각 주체들이 받는 세수 증감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예상한 수치입니다.

올해는 정부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앞으로 5년(2025~2029년)간 고소득자는 1664억원, 서민·중산층은 6282억원의 감세 효과를 거둔다고 발표했습니다. 서민·중산층의 세수 감소 효과가 고소득자보다 4배 가까이 많습니다. 그런데 기재부는 ‘기타’ 항목으로 3조2260억원의 감세 효과가 생긴다고 분류했습니다. 전체 세수 감소액(-4조3515억원)의 74.1%에 달하는 금액을 ‘기타’로 분류한 것입니다.

기재부는 4조565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감세 효과 전액을 ‘기타’로 분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속세는 상위 5% 내외의 고액 자산가들이 사망할 때 내는 세금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야당 의원들은 상속세를 ‘고소득층 감세 효과’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기재부 국감에서 “74%가 기타입니까? 메인(주요내용)이지”라며 “나라 재정도 좋지 않은데 초부자 감세로 욕 먹을까 봐 꼼수를 쓴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재부는 “세 부담 귀착 효과는 자산이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한다”면서 “상속인이나 피상속인(사망인)의 소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기타로 분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거액의 자산을 상속받더라도 소득이 낮다면 고소득층이 아닌 서민·중산층으로 분류한다는 것입니다. 기재부는 큰 감세 효과가 예상되는 가업상속공제의 세수 감소 효과도 기타로 분류했는데, 어떤 가업주가 언제 사망할지 모르기에 추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상속세는 100% 고액자산가가 내는 세금이기에 상속세 인하가 고소득층뿐 아니라 고자산층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상속세제 개편안의 세 부담 귀착 효과 계산을 누락한 것은 부자 감세 효과를 축소하려는 의도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기재부가 세수귀착 효과를 분석할 때 중산층의 기준을 ‘평균소득의 200%(근로소득 연 8400만원)’로 삼은 것도 논란이 됐습니다. 김영환 민주당 의원은 “평균임금의 200%라는 기준은 다른 통계에서 거의 쓰지 않는 자의적인 기준”이라며 “결론을 정하고 통계를 맞춘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근로소득이 연 8400만원인 사람은 소득 기준 상위 10%에 해당합니다. 소득 상위 10%가 중산층으로 분류된 겁니다.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고소득층이 전체 평균을 끌어올려 ‘통계적 착시’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통계청의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22년 기준 가구 중위소득은 연 5362만원, 가구당 평균소득은 6762만원입니다. 평균소득이 중위소득보다 1400만원이나 높습니다.

이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소득 200%를 중산층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중위소득의 150%를 중산층으로 봤다가 2019년부터 200%로 상향했습니다. 중위소득은 국민소득을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입니다.

기재부는 “부자감세를 숨기려고 중산층 기준을 조작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때 세수효과의 서민·중산층 귀착을 발표해 왔으며 ‘평균임금’을 일관된 기준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입니다. 기재부는 가구단위가 아닌 개인별 중위소득을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기재부는 “세수귀착 분석에 필요한 근로자 개인 단위 중위소득 통계는 공표되지 않고 있어,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세부담 귀착을 분석하기 곤란하다”고 밝혔습니다. 통계청이 개인별 중위소득을 파악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삼아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재부의 해명이 과거 발표와 모순된다는 점입니다. 경향신문이 기재부의 2011~2024년 세법개정안 보도자료를 전수 조사해보니, 기재부는 2021년까지 일관되게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세부담 효과를 발표해왔습니다. 일례로 기재부는 2021년 세법개정안 보도자료에서 세 부담 귀착효과를 발표하면서 서민·중산층 기준을 “중위소득의 150% 이하인 자(총급여 7200만원 이하인 자)”로 명시했습니다.

기재부는 ‘보도자료에는 중위소득이라고 적었지만 실제로는 평균소득이 기준이었다’고 다시 해명했습니다. 보도자료상의 중위소득은 평균소득을 잘못 표기했다는 것입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보도자료에는 OECD 기준에 따라 중위소득이 기준이라고 써놨지만 브리핑할 때는 평균소득을 쓴다고 설명해왔다”며 “보도자료만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임기 첫 해인 2022년 보도자료에서부터 중산층 기준이 ‘중위소득의 150%’에서 ‘평균소득의 200%’로 바뀝니다. 기재부는 OECD의 중산층 기준이 중위소득 150%에서 중위소득 200%로 바뀜에 따라, 기재부도 평균소득 150%에서 평균소득 200%로 기준을 바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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