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쇼츠 각’에 갇힌 국회

2025-12-16

“쇼츠 분량 다 땄으니 내려오세요!”

9일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마이크 중단에도 발언을 이어가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유튜브 쇼츠로 올릴 자극적인 발언은 할 만큼 한 듯하니 이쯤에서 내려오라는 비아냥이었다. 이튿날 본회의에서는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의장님, 또 마이크 끄시게요?’라는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을 들자 김현 민주당 의원이 “쇼츠 찍지 마세요”라며 맞받았다.

이제 ‘쇼츠’는 국회를 비판하는 언어를 넘어서 국회 안에서조차 서로를 조롱하는 표현이 됐다. 22대 국회의 뉴노멀이다. 상임위에서 질의하던 의원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여 ‘쇼츠 각’을 잡으면, 보좌진은 기다렸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낸다. 그렇게 찍힌 영상은 ‘참교육’ ‘사이다’ 등의 제목을 달고 유튜브에 올라간다.

쇼츠 정치는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 국회의 풍경 자체를 바꾸고 있다. 짧고 센 한 방이 주목받다 보니 숙의의 과정은 뒤로 밀린다. 국회가 토론의 장이 아니라 촬영 세트처럼 소비되는 순간이다.

그에 비해 국회 본연의 기능인 입법 과정은 길고 지난한 ‘롱폼’이다. 법안에 대한 토론이 가장 심도 있게 진행되는 소위원회 회의 과정은 며칠 뒤 공개되는 회의록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발의 단계부터 이슈가 된 법안이 아니라면 심사 과정 하나하나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쇼츠가 주의력을 앗아가는 사이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의원들 역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개적인 자성의 목소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조회 수가 터졌다”며 “적성에는 안 맞지만 계속해볼까”라고 묻는 한 의원의 말에는, 유행에 올라타지 않으면 존재감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이 담겨 있다.

쇼츠로 조각조각 잘린 국회의 모습만 접한 국민은 국회를 어떻게 기억할까. 고성과 조롱의 통쾌함만 남고 느린 입법의 과정은 보지 못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국회가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장면을 만드는 곳으로 각인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빠른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국회만큼은 느리고 깊이 있는 롱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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