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저녁 베이징 천안문 광장은 인적 없이 을씨년스러웠다. 2년 전 이날 상하이에서 백지시위가 일어났다. 백지시위는 군체성 사건으로 부르는 집단행동의 한 형태였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11·25 천안문 야간 자전거 타기를 알리는 포스터를 봤다. 8일 허난성 카이펑에서 애국 대학생 20만명이 함께한 야간 자전거 라이딩을 베이징에서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새로운 군체성 사건이 잦아지는 중국의 한 모습이다.
이날 천안문 광장 동쪽으로 국가박물관이 보였다. 2년 전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청동기 전시회에 고구려와 발해가 빠진 한국사 연표를 전시했던 장소다. 얼마 전 한 취재원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변방정권으로 기술한 대학교재 『중화민족공동체개론』의 출판을 알려줬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인 판웨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이 대표 저자였다.
교재를 살핀 국내 중국사 전문가는 “1970년대 마오쩌둥 선집을 인용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라며 “이른바 중화민족론을 정치적 선전도구로 만들어 교육의 범위에 끼워 넣은 중국판 국민윤리 교재”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화사상의 부활에 경각심을 촉구했다.
마침 트럼프 1기 국무부 차관보를 역임한 중국 전문가 크리스토퍼 포드 박사가 지난 20일 펴낸 글을 소개받았다. 제목은 ‘그의 이름을 불러줘: 공산 중화 제국주의’다. 포드 전 차관보는 현 중국의 세계전략과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유사점 10가지를 꼽았다. “19세기 다른 나라들이 중국을 지배했던 것처럼 중국이 다른 나라를 지배할 수 없다면 과거의 ‘굴욕’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중국이 한국과 고구려사 구두 합의를 했지만 같은 주장을 거듭하는 이유인 셈이다. 포드 박사의 ‘공산 중화 제국주의’는 ‘붉은 중화사상’이 더욱 어울릴 듯하다.
트럼프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에 지명한 알렉스 웡이 밝힌 중국관은 한층 과격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허드슨연구소에 ‘중국과 경쟁: 엔드게임 논쟁’을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 경쟁을 ‘관리’만 했다면, 웡은 이제 엔드게임으로 끝장을 볼 때라고 주장했다.
마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만·인권·체제·발전을 네 개의 레드라인으로 통보했다. 체제 흔들기도 대비가 됐다는 뉘앙스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펼칠 미·중 2라운드 전장에서 한국은 멀리 있지 않다. 애꿎은 희생양이 없도록 중국을 오가는 개개인도 주의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