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갑의 난독일기] 나같이 한심한 것은

2024-11-21

누구였더라?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낯설어서 한참 만지작거립니다. 명함이든 무엇이든 주고받았으니 저장되었을 게 분명한데,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답답할 밖에요. 죄송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몇 번을 속으로 불러 보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맙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늘 겪는 일입니다. 젊어서는 전화번호를 적은 조그만 수첩을 정리하였는데, 요즈음은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합니다. 굵은 볼펜으로 주욱 선을 그어 지우던 시절에서 슬쩍 삭제 버튼을 누르는 세상으로 변했지만, ‘정리한다’는 본래의 목적에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요즈음 나와 당신이 하는 정리는 방이나 책상을 정돈하는 것이 아닙니다. 쓸거나 털거나 닦아내는 게 아니고, 높낮이를 조절하거나 위치를 바꾸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정리는 묵은 생각을 지우고 고인 시간을 비우는 것입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세상살이에 눌린 어깨를 쉬게 하는 겨울잠 같은 것이랄까요.

묵은 계절을 정리하는 건 사람 아닌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은 계절의 온도에 따라 낯빛을 바꿉니다. 스치고 지날 때 얼굴을 할퀴는 손톱은 겨울바람의 전유물입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조차도 겨울바람이 뿜어내는 작별의 입김을 흉내 낼 순 없습니다. 겨울바람이라야 비로소 해묵은 계절 속에 뒤엉킨 온갖 감정을 씻어낼 수 있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모든 것들의 손과 발과 머리카락을 뒤흔들어서 아귀다툼의 자국을 떨어냅니다. 과시와 굴욕을 지워버리고 쓸모와 무모를 날려 보냅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겨울에 부는 바람은 이 땅의 악취를 쓸어 모아 저 땅으로 밀어내는 청소부 같습니다. 철 따라 체온을 바꾸는 게 바람이라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정리하는 건 물입니다. 얼음으로 변한 순간 더 이상 물은 눈물이나 슬픔 따위가 아닙니다. 꽝꽝 얼어붙은 얼음은 계절을 가두는 거울입니다. 철광석처럼 단단한 차가움으로 과거를 가두었다가 미래를 녹여냅니다. 그런 점에서 얼음은 주검 속에 살림을 품은 신기루 같습니다.

생명을 지닌 것들은 죄다 겨울을 나는 방법을 압니다. 실을 토해낼 줄 아는 것들은 고치로 몸을 감싸 겨울을 납니다. 굴을 팔 줄 아는 것들은 겨울잠 끝에 봄을 맞이하고, 스스로 심장을 멈춰 겨울을 버티는 개구리도 있습니다. 처절함으로만 따지자면 뿌리로 사는 것들이 으뜸입니다. 나무는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았던 모든 걸 버리면서 겨울을 납니다. 꽃과 열매와 이파리마저 떨쳐내고 껍질뿐인 몸뚱이로 추위를 견딥니다. 꿈쩍도 없이 못 박고 서서, 백 번째 겨울을 보내고 천 번째 봄을 맞이합니다. 그리 보면, 사람처럼 뻔뻔한 동물도 없습니다. 지구에 사는 동물 중에서 계절에 순응하지 않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시간을 거스르고 계절을 역행합니다. 따르는 건 오직 돈벌이일 뿐, 세상이야 망가지든 말든 관심 밖입니다. 그래서 치매(癡呆)라는 형벌이 이 땅에 창궐하였을까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의 교만을 지우기 위해, 신이 선택한 것이 바로 그걸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심한 나는, 겨울의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 해묵은 전화번호나 지우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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