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쭉하고 퍼석한 이쌀, ‘Made in Korea’라고?··· 열대 쌀’ 인디카 나온다

2024-10-05

‘기후변화 관문’ 해남에 26㏊ 규모 장립종 벼 시범재배 단지 조성

아열대 기후 점차 가속화…“집중호우 등 잦은 우리나라에도 적합”

“아열대 기후가 되다보니 장립종 벼를 키울 수 있게 된거죠.”

지난달 12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장립종 벼 시범재배 단지에서 만난 윤영식 땅끝황토친환경영농조합법인 대표(54)는 짙푸른 벼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영산강 간척지에 들어선 단지의 면적은 26㏊(헥타르·1㏊는 1만㎡), 축구장(0.714㏊) 36개 크기다. 논은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정리가 잘 돼 있었고, 논 바닥 위로는 장마와 폭염을 견딘 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고개숙인 벼 이파리 사이로 살짝 누런 빛을 내는 이삭들이 눈에 들어왔다. 윤 대표는 “10월 말쯤 황금빛 알맹이를 맺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표는 5년 전부터 사비를 들여 장립종 벼를 키우고 있다. 그는 “아열대 지역에서 생산되는 장립종 벼는 상대적으로 폭우로 인한 침수 등 이상기후에 내성이 강하다”며 “갈수록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우리나라에도 적합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벼 재배지는 어렵지 않게 선택했다. 한반도의 땅끝, 해남이었다. ‘기후변화의 관문’으로 불리는 해남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장립종 벼가 재배되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전국 평균 기온보다 1도 가량 따뜻한 해남이 다른 지역보다 10~20년 앞서 아열대 기후를 맞을 것으로 본다. 해남은 경지면적(3만5000㏊)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넓고, 전국 최대 규모의 농식품 기후변화대응센터도 2026년 세워질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부산과 울산의 위도와 비슷한 돗토리현을 중심으로 약 20ha 규모로 장립종 벼를 재배 중이다.

윤 대표는 “장립종 벼가 잘 자라려면 토양뿐 아니라 기온과 일조량 등 기상 여건이 아열대 기후와 비슷해야 한다”며 “처음 시범재배 할 때와 비교해 올해는 벼 알맹이와 생육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국내 수요 충족·수출 확대 등으로 쌀 과잉 문제 해소…중장기적 기후변화 위기 대응

인디카로 불리는 장립종 쌀은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낟알길이가 6.6∼7.5mm이며, 찰기가 없어 밥알이 서로 들러붙지 않아 주로 볶음밥용으로 많이 쓰인다.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먹는, 자포니카로 불리는 단립종(5.5mm 이하)은 장립종에 비해 길이가 짧지만 찰기가 많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등숙기(곡식이 익는 시기)에 적합한 일평균 온도와 소요 기간은 단립종 벼의 경우 21~23도, 50~60일 정도인 반면 장립종 벼는 30도 이상에서 30~35일이 걸린다”고 했다.

인디카는 전 세계 쌀 소비 시장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인디카로 불리는 장립종 쌀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며 “전 세계 쌀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5~90%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인디카 수요는 늘고 있다. 국내 체류하는 아열대권 국적의 외국인과 동남아 음식 선호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남아·동남아 국적 체류 인원은 2007년 24만명에서 지난해 85만명으로 늘었다. 인디카를 선호하는 인구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체류 인원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디카 수요 인구는 200만명 이상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인디카가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윤 대표는 “국내 체류 외국인의 입맛과 수출기업 수요에 맞는 품종 개량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품질의 인디카 쌀로 인정받기 위해선 길이, 향, 단단함 등 3가지를 갖춰야 하는데 아직 완벽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그간 경험치를 통해 품종 개량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기후변화 대응 관점에서 인디카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수요를 충족하고, 수출을 통해 세계 장립종 쌀 시장에 진출하겠다”며 “단립종을 키우던 농가를 장립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 쌀 공급 과잉문제를 해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 작물들, 재배지 감소하거나 사라질 우려…대체 품종·재배법 개발 시급

기후변화 영향으로 인디카 등 아열대 작물이 주목받는 반면 기존 작물의 재배지는 점차 북상하면서 줄어들고 있다. 사과가 대표적이다. 사과 주 생산지인 대구·경북의 재배면적은 1993년 3만6021㏊에서 지난해 2만151㏊로 30년 새 44% 줄었다. 같은 기간 강원도의 사과 재배면적은 483㏊에서 1679㏊로 247.6%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은 2070년대에 사과 재배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봤다. 농식품부는 정선, 양구, 홍천, 영월, 평창 등 강원 5대 사과 산지 재배면적을 지난해 931㏊에서 2030년 2000㏊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던 작물이 전국으로 확대되거나, 아예 사라지는 작물도 생겨난다. 과거 30년간 주로 남해안 지역에서 재배되는 키위는 2090년엔 강원도 일부를 제외한 전국으로 재배지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해안과 제주 등에서 재배되는 난지형 마늘도 2100년을 전후로 전국 재배가 가능해진다. 반면 고랭지 재배가 적합한 여름배추는 2050년이 넘어가면 재배지가 크게 감소하고, 2090년대에는 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아열대 작물의 국내 재배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경남 창원과 통영 등에선 아열대 작물인 애플망고와 파파야가 재배 중이고, 몽키바나나는 시범재배에 들어간 상태다.

기후변화는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오를 때 작물 재배한계선은 81㎞씩 북상하고, 고도는 154m 올라간다. 한국 연평균 기온은 1912∼2020년 기간 동안 10년에 0.2도씩 상승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0.07도)의 3배에 달한다.

특히 2050년부터는 국토의 절반 이상이 아열대기후대로 변해 사과와 배 등 전통 작물을 키우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고배출 경우) 남한의 아열대기후대는 1981~2010년 6.3%에서 2030년대 18.2%, 2050년대 55.9%, 2090년대엔 97.4%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수 농촌진흥청 지도관은 “아열대 기후로 변하면서 전통 작물의 재배지가 줄거나 생산성,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기후변화로 사라질 우려가 있는 전통 작물을 대체하기 위한 품종과 재배법의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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