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지원금 현금화? 말 안됨” 이재명 기강도 잡은 ‘교수님’

2025-06-22

이재명의 사람들

1986년 초 성남주민교회에 20대 청년이 찾아왔다. 이해학 목사가 이끌던 성남주민교회는 1970년 중반부터 경기 성남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한 곳이다. 1980년대엔 철거민 등 도시 빈민을 위한 시민운동의 중심이었다.

마침 교회 안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경원대(현 가천대)에 갓 부임한 30살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청년의 첫인상을 “말수는 적었고, 얼굴이 깨끗했다”고 기억했다. 사법고시 준비생이었던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정책 멘토’인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이 처음 만난 순간이다.

이 대통령은 교회에 자주 드나들었다. 빈민운동과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성남은 서울에서 강제 이주한 빈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광주대단지 사건(1971년 성남의 도시빈민 시위 사건)의 아픔도 여전했다. 이 대통령은 그해 10월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89년엔 판검사의 길을 마다하고 성남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도시 빈민이 많던 당시 성남엔 서울·경기 지역 학생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소장파 학자’였던 이 위원장은 그런 청년들과 교류했다. 경희대 수원캠퍼스 총학생회장 김태년(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와 서울에서 온 서울대 약대 학생회장 김미희(전 통진당 의원), 그리고 그의 남편인 백승우(전 통진당 사무부총장)가 대표적이었다. 이 대통령도 그들과 같은 또래였다.

다만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해 곧바로 사법고시에 매진한 변호사 이 대통령과 대학 학생회장을 지낸 ‘학출’(학생운동 출신)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한주 위원장은 “‘학출’들은 함께 탄압받았다는 동지애가 있는데 이 대통령에겐 그런 게 없었다”고 했다. 80년대 대다수 학생운동가가 NL(민족해방운동) 노선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념과도 무관했다. 이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조언해 주며 따로 각별히 챙겼다고 한다.

40년 가까이 이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보며 호흡을 맞춘 이 위원장은 지난 5일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장에 임명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 18일 기재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 2017년 업무보고에 비해 공약에 대한 이해도와 충실도가 떨어진다”고 직격하는 등 이 대통령을 대신해 부처 기강 잡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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