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는 감각의 시집입니다. 감정보다 감각이 먼저 도착하고, 말보다 몸짓이 먼저 울려지는 시집입니다. 아이는 말로 하기 전, 감각으로 세계를 받아들입니다. 그 감각은 물컹하고 부드러우며,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문신 시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린이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단단하다는 건, 무겁다는 뜻이 아니라, 작은 생채기에도 흔들리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는 마음의 결을 말합니다. 그런 결을 시로 옮겨 쓴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잊었던 무언가를 건네줍니다. 작고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합니다.
어린이는 바람을 만지지 못하지만,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무엇인가 말을 걸고 갔음을 느낍니다. 문신 시인의 동시집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는 바로 그 ‘말 걸기’를 감각적으로 붙잡아낸 동시집입니다. 바람의 손끝, 나뭇잎의 숨소리, 하늘을 가르는 새 한 마리의 날갯짓이 모두 시가 되어 아이의 감정을 깨웁니다.
이 시집은 아이들의 작은 마음이 세상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감싸는 바람의 시집입니다. 눈을 감고 읽어야 더 잘 보이는 시, 마음을 가만히 열어야 들리는 시입니다.
시집을 펼치자마자 만나는 시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는 바람이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열두 살 아이의 비밀 일기처럼 속삭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생기는 반짝임,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사랑을 느낄 때의 투명함. 문신 시인은 그것을 바람에게 주었습니다. 그 순간, 바람은 주인공이 됩니다. 시인이 만든 이 세계에서 바람은 ‘감정의 전달자’이자 ‘기억의 증인’입니다.
시집 속에는 일상이 조용히 번져갑니다. 혼나는 나무, 고래라는 이름의 고양이, 윤이가 좋다, 달의 마술사, 그리고 달팽이와 참꽃마리, 비를 듣는다 등, 그 모든 것이 문신 시인의 언어 안에서 정갈하게 놓입니다.
시인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러나 시인의 깊은 시심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문신 시인의 동시는 조용히 말하지만, 그 울림은 깊습니다. “열두 살이 된다는 건 바람이 연주하는 빨간 앵두의 노래를 온몸으로 따라 부르는 일이지”라는 구절처럼, 오래오래 품에 남습니다. 열두 살이라는 나이의 감성과 상상력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시인은 바람의 움직임과 아이의 내면을 연결하여, 보이지 않는 감정과 생각들을 시로 표현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어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불러내고 싶은 어른에게, 그리고 지금 ‘바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정한 마음결을 만나게 할 것입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기도 하고, 물살보다 빠른 은어도, 어쩌면 강 언덕에 우뚝 선 버드나무로 다가가게 할 것입니다.
김헌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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