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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迂)’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첫 글자이다. 우여곡절은 일상에서 상투어처럼 쓰이는 사자성어이다. 쓰기에 따라서는 고급스런 느낌도 준다. 국어사전에서는 ‘여러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로 풀이해 놓았다. 상투어로 보인다는 건, 말의 뜻이 자못 심오한데도 그런 것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기능적으로만 쓴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약점이기도 하다.
한자 ‘우(迂)’는 잘 쓰지 않는 한자다. '한자 자전'에서 이 글자를 찾으면 ‘멀다’라는 뜻으로도 나오고, ‘에돌다’라는 뜻으로도 나온다. 그런데 ‘멀다’라는 뜻이나 ‘에돌다’라는 뜻은 그야말로 서로 멀지 않다. 사촌쯤 되는 친밀한 뜻이다. ‘에돌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곧바로 나아가지 않고 멀리 피하여 돌다’로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迂)’가 지닌 ‘멀다’라는 뜻에는 단순히 거리가 멀다는 뜻보다는 그 어떤 대상을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그걸 멀리 두고 돌아서(피해서) 가려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우회(迂回)’라는 말이 떠오른다. 곧바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가는 것이 ‘우회(迂回)’이다. 이 한자어에 대응하는 고유어가 ‘에돌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곧바로 가지 못하고 멀리 돌아서 가게 될 때가 있다. 우회하지 않고 살아 온 자, 누가 있겠는가. 때로는 가던 길을 울면서 돌아선 적도 있고, 때로는 위기 앞에서 돌아서 가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적도 있다. 누군가 자기 인생의 ‘우여곡절’을 절절하게 말하며 ‘우(迂)’의 시간을 고백하는 걸 듣노라면, 그 우회가 운명적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우회의 인생길’은 내 현실을 감당해 내려는 깨달음의 길일 수도 있고, ‘도전의 길’일 수도 있다. 우회의 인생길, 거기에는 하늘의 섭리가 배경으로 놓이기도 하고, 인간의 깊은 성찰이 스며들기도 한다. 모세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바로 가나안 땅으로 오지 않고, 광야에서 40년을 에돌며 우회했던 사건에 대한 성서 해석학적 의미는 참으로 풍성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回軍)은 긴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우회의 지혜’를 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흥하는 세력 명(明)을 치러 곧바로 나아가다가 그 길을 우회하고 되돌려 온 것은 그가 뒷날 조선을 세워 나라를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5세기 유럽의 해양 세력들이 바다를 통해 인도로 가겠다고 해서 나아갔지만, 그들이 도달한 곳은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서인도 제도)이었다. 자기들도 모르는 우회의 길을 갔던 셈이다. 그 우회는 오류였던가? 그렇지 않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으로 흘러가게 했다.
전쟁의 기술에서는 적의 강한 예봉(銳鋒)은 무조건 피하여 우회할 것을 강조한다. 삼국지에 수백 번도 더 나오는 장면이다. 이보전진(二步前進)을 위한 일보후퇴(一步後退)에는 우회의 진경이 담겨 있다. 적을 험지로 유인하려고 후퇴를 연출하는 것은 우회가 지략의 경지에 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인생의 먼 길을 가며 우회를 생각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돌아서 가야만 닿게 되는 것이 인생 행로의 숨은 질서라는 너그러운 생각도 든다.
돌아서 가는 우회의 생(生)이 있으므로 해서 그 인생은 모종의 심연을 배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