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기방무사, 기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024-11-14

조선 후기에 유행한 풍속화는 서민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역사 자료입니다. 풍속화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지요. 맞습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입니다. 신윤복의 그림 중에 ‘기방무사(妓房無事)’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기방은 ‘기생의 ’집이고, 무사는 ‘아무 일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림은 제목과 달리 많은 상상을 하게 합니다(궁금하시다면 포털에서 ‘기방무사’를 찾아보세요).

그림 속 배경은 기방입니다. 기녀의 집, 즉 기생의 집입니다. 머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한 여성이 마루 앞에 놓인 댓돌 위에 서 있습니다. 집주인인 기생입니다. 외출하였다가 돌아오는 모양입니다. 무성한 나뭇잎으로 보아하니 계절은 한여름입니다. 그림 속의 발(차양)도 한여름을 알리는 장치입니다. 한여름이니 방문이 활짝 열린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방 안의 상황이 모호합니다. 한 남성이 왼팔을 문턱에 걸치고 기생을 바라봅니다. 마치 자신의 집에 있듯 편안한 차림입니다. 그 옆 처녀 아이는 몸을 남성 쪽으로 기울이며 이불을 덮어주며, 기생을 바라봅니다. 한여름에 웬 이불?

그림 속 등장인물은 서로 어떤 사이일까요? 남성은 기생의 남편인 ‘기부’입니다. 처녀 아이는 기생의 몸종(하녀)이고요. 기부는 양반으로 그림의 주인공인 기생을 첩으로 들였습니다. 그는 기혼자인 처지에서 기생을 첩으로 들였고, 기생첩이 생활할 집을 따로 마련해주었습니다. 기생의 생활을 돕기 위해 몸종을 하나 딸려 보냈을 것이고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본가에서 보내지만, 틈틈이 기생첩의 집을 찾습니다. 기생첩이 잠시 집을 비웠고, 몸종 아이가 홀로 집을 지키고 있던 여름 어느 날 기부가 기생첩의 집을 찾았습니다. 뒷 상황은 짐작이 가시죠? 예상한 그대로입니다.

어느 여름날 기방에서는 분명 무슨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의 제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생의 집에는 아무 일이 없다’니요? ‘기방무사’는 ‘기방에 아무 일이 없었던 거 맞아? 아니잖아, 우린 조금 전 너희들이 한 일을 다 알고 있어. 누굴 속이려고 그래’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림으로 양반사회의 허위의식을 풍자하려고 했던 신윤복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그림을 감상했던 당시 조선 대중들의 시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림의 주인공인 기생에 주목하다 보면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한 상상을 기생이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심지어 그녀는 공식적인 아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성의 아내입니다. 남편과 몸종의 부적절한 행위를 목격한 그녀가 취할 다음 행동은 어떠했을까요? 부도덕에 대한 질타일까요? 아닙니다. 기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할 게 분명합니다. 밖에 무언가를 놓고 왔다거나,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화장실이 급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지 않습니까?

기생의 현실적인 처지로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조선시대 기녀는 관청 소속의 천민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대여섯 살에 교방에 들어가 7~8년간 노래와 춤, 악기연주를 배운 뒤 기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생이 된다는 것은 기부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지요. 가난한 천민의 신분에 관청에 소속된 존재(관물)이니, 돈과 권력을 가진 양반의 첩이 되는 것은 그들의 로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기생첩의 ‘끗발(배경)’이 되었을 테니까요.

그림 속 기생은 상황을 목격한 순간 갈등에 휩싸였겠지요. 어쩜 망설임은 잠시였을지도 모릅니다. 기부의 부도덕함을 까발리는 순간, 기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즉 그가 제공하는 사회경제적인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될 테니까요. 참고로 도성에 사는 기생의 경우 국가행사에 동원되는 대가로 1년에 쌀 한 섬을 받았다는군요. 이 얘기는 생계를 위해 다른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신분 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천민인 기생들은 일상적으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방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자세하게 보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세상에 관한 관심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영미 울산대학교 강사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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