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기술과 응용] 우주에서 자라는 초록 혁신, 베지(Veggie) 시스템

2025-02-27

우주에서 작물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져 왔다. 우주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은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 식물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 우주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고려가 있어야 하고,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우주 환경에서 수행된 대표적인 식물 성장 실험으로 2014년부터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입되어 진행된 베지(Veggie)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은 단순히 식물을 우주에서 키우는 것을 넘어 장기적인 우주 임무에서 요구되는 식량 자급 문제 해결, 우주비행사의 심리적 안정, 지속 가능한 생태계 구축이라는 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계 및 추진되었다.

베지는 NASA가 개발한 식물 생산 시스템으로, 국제우주정거장 내부에 설치된 원통형 재배 모듈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식물 베개(Plant Pillow)이다. 식물 베개는 우주 환경에서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소형 재배 용기로 식물의 뿌리 성장과 물 공급을 지원한다. 화학적 내성이 뛰어난 테플론 코팅을 적용한 고강도 고내열성의 케블라(Kevlar) 섬유로 제작되었고 내부는 질석과 비료가 혼합된 재배 매질로 채워져 있다. 질석(Perlite)은 가볍고 다공성 구조로 되어 있어 물과 공기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며, 과도한 물은 배출하므로 배수와 보습에 유리하다.

씨앗은 발아용 심지에 부착되어 있는데 심지는 물과 양분을 뿌리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식물 베개는 베지 시스템의 뿌리 매트(root mat)와 연결되어 있어 모세관 현상을 통해 물을 공급받는다. 뿌리 매트는 수분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전달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노멕스(Nomex) 위킹(wicking) 재질로 제작되었고 밀폐된 1.5리터 용액을 담을 수 있는 물 저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노멕스 위킹 재질은 다공성의 미세한 섬유 구조로 되어 있고 노멕스 섬유가 물과 잘 결합하는 친수성을 가지고 있어 물 분자가 섬유 표면에 강하게 부착됨으로써 모세관 현상이 잘 일어난다.

액체가 미세관에 유입될 때 관벽에 대해 부착력이 액체의 응집력보다 크면 액체가 부착력과 응집력이 등가가 될 때까지 상승하게 되는데 이것을 모세관 현상이라고 한다. 우주비행사는 밀폐된 물 저장소에 물을 주입하거나 뿌리 매트를 통해 식물 베개에 수분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주사기를 이용해 정확한 양의 물을 공급해야 한다. 모세관 현상을 이용한 수분 공급은 무중력 상태에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베지 시스템은 팬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공기 순환을 유지하여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균형을 맞춘다.

앞서 설명한 베지 시스템은 초기 모델이다. 베지 시스템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왔는데 식물 베개 기반의 초기 모델에 이어 2019년에 PONDS(Passive Orbital Nutrient Delivery System)가 도입되었다. 기존 식물 베개 방식에서는 주사기를 이용해 물을 수동으로 주입하여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물이 균일하게 분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기존 식물 베개는 크기가 작고 뿌리 성장 공간이 제한되어 토마토와 같은 큰 작물이나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기 어렵고 뿌리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뿌리 호흡이 제한되었다.

PONDS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시스템으로 물/영양 저장소, 식물 재배 실린더, 흡수 매트(wicking material)로 구성된다. 식물이 자라는 공간인 식물 재배 실린더는 흡수 매트를 통해 물/영양 저장소에서 물과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흡수 매트는 친수성 특성을 가진 특수 섬유로 물을 빠르게 흡수하고 전달할 수 있는 다공성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모세혈관 현상을 통해 물과 영양분을 전달한다. 새롭게 설계/제작된 흡수 매트를 통해 우주비행사들이 주사기로 물을 공급하지 않아도 되었고, 식물 재배 실린더를 통해 뿌리 공간 제한과 작물 재배 크기와 다양성 문제가 함께 해결되었다.

베지 시스템의 초기 모델과 PONDS는 잎채소와 같은 소형 작물을 위한 재배 시스템이다. 이와 달리 2017년도에 도입된 APH(Advanced Plant Habitat)는 밀과 같은 대규모 작물 재배를 위한 시스템이다. APH는 완전 밀폐형 환경에서 식물 생리학 연구 및 대규모 작물 재배에 초점을 맞추어 넓은 재배 공간과 고도의 정밀 환경제어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베지 시스템을 통하여 재배에 성공한 작물로는, 2014년 VEG-01 A 실험에서 33일간 재배 후 안전성이 검증된 로메인 상추, 2015년 VEG-01 C 실험에서 우주 최초 개화에 성공하고 생애 주기를 완성한 백일홍, 2017년 VEG-03 B 실험에서 28일 만에 수확 및 반복 수확 기술이 검증된 중국 배추, 2021년 VEG-03 L 실험에서 64일간 재배 후 인공 수분으로 종자 생산에 성공한 청경채, 2023년 PH-04 실험에서 48개 씨앗 중 4개가 살아남아 26개의 열매를 수확한 칠리 페퍼 등이 있다.

NASA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주에서의 식물 재배는 우주비행사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2021년 ‘초 난쟁이 청경채’ 재배의 케이스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식물이 지구와의 연결 고리”라는 정서적 만족감을 표시하였으며, 2023년 VEG-05 토마토 실험에서는 작물 관리가 우울증 완화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국제우주정거장 베지 시스템의 작물 재배 성공은 우주에서 신선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베지 시스템의 개발과 실증 과정을 통해 미세중력 환경에서의 재배 기술과 이를 위한 환경제어 기술이 더욱 발전하였고, 인류가 우주로 진입하기 위해 넘어야 할 정서적 장벽이 낮아졌다.

이영두 공학박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