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방적왕’ 성공 발판 대규모 모국 투자 앞장,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공헌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부지와 건물 기증 및 재일공관 기증 운동도 앞장 서
민족학교 운영자금 지원 등 日 동포사회 발전에도 기여

재외동포청은 10월 ‘이달의 재외동포’로,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건물 및 부지를 기증하고, 어려웠던 시기 대규모 모국 투자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서갑호(1914~1976년) 회장을 선정했다.
앞서 재외동포청은 대한민국 발전 또는 거주국 내 한인 위상 제고에 기여한 동포를 발굴해 매월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발표하고 있다. 참고로 3월 김평진 전 재일제주개발협회장을 비롯 4월 홍명기 전 M&L Hong 재단 이사장, 5월 임천택 독립운동 지사, 6월 박병헌 전 재일민단 단장, 7월 박노학 전 사할린억류귀환한국인회 회장, 8월 이의경(필명 이미륵) 지사, 9월 서세모 의학박사 등이다.
서 회장은 1914년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9세 때 혈혈단신으로 일본 오사카에 건너갔다. 그곳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며 한푼 두푼 모은 종잣돈으로, 가내 수공업 형태의 방직공장을 시작으로 1948년 ‘사카모토’ 방적을 설립하며 승승장구했다.
1950년 ‘오사카방적’을 설립하고, 5년 뒤 ‘히타치방적’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1961년에는 연매출 100억 엔을 올리며 ‘일본의 방적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호텔, 부동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방적업으로 성공한 그는 조국을 잊지 않고 조국과 재일동포 사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2년 도쿄 아자부1번지 토지와 건물, 1975년 시로카네 토지와 건물을 우리 정부에 기증했고, 이는 현재의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및 대사관저의 토대가 됐다.
특히 민족 교육에도 관심이 깊어 1957년 제2대 ‘금강학원(일본 오사카 소재 한국학교)’이사장을 맡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간 운영자금을 사재로 지원했고, 오사카민단에 연 500만 엔씩을 찬조하며 재일동포들의 권익 향상에 힘썼다.
그의 모국 투자는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 계획을 시행할 시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3년 2월 영등포 소재 한국 최대 면직공장인 ‘태창방직’을 100만 달러에 인수해 ‘판본방직(주)’을 세웠다. 이는 최초의 재일동포의 대규모 모국 투자 사례로, 당시 우리나라 섬유 산업과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67년 ‘방림방적’으로 사명을 바꾸고, 1973년 구미에 약 7천만 달러를 투자해 ‘윤성방적’을 새롭게 설립했다. 그러나 1974년 1월 ‘윤성방적’에 큰 화재가 발생했고, 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사카모토방적’이 도산하고, 그의 사업은 급격히 기울었다.
서갑호 회장은 일본, 홍콩, 필리핀 등을 오가며 재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재기하지 못하고 1976년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에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은 2013년 신청사를 개관할 때 그의 아호를 딴 역사관인 ‘동명관’을 대사관 내 설치했고, 2015년에는 그의 흉상을 제작해 대사관에 전시하는 등 그의 모국 기여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 지난해 신축한 대사관저를 ‘동명재’로 명명한 바 있으며, 매년 11월 1일을 ‘서갑호의 날’로 지정해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서갑호 회장의 기부와 투자는 재정적 기여를 넘어 우리나라의 위상을 제고하고, 재일동포 사회 및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그의 조국애와 헌신이 잊혀지지 않도록 10월의 재외동포로 선정한다”고 소개했다.
[전국매일신문] 정원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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