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일한 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숨져
근로복지공단 “발병 원인 명확하지 않다” 주장
1심 재판부 “유해요소들에 지속적·복합적 노출”

법원이 반도체공장 노동자의 사망에 대해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발병 원인이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어도 다양한 유해요소가 복합적으로 발병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지난 4월 반도체공장 노동자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04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한 중소기업에서 반도체 웨이퍼 연마·세정 업무를 했다. A씨는 2017년 3월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받았지만 이듬해 12월 끝내 숨졌다.
유족은 A씨가 공장에서 여러 유해물질에 노출돼 병이 생겨 사망했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작업환경측정 결과나 역학조사를 참고할 때 취급했던 유해물질의 양이나 노출 빈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고, 노출 물질과 이 사건 상병과의 관련성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유족은 공단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발병 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A씨가 사업장 등에서 근무하는 동안 디클로로메탄을 포함한 다양한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전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병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