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국가폭력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됐다. 1948년 10월21일, 대한민국 정부가 선포한 역사상 첫 비상계엄은 전남 동부 일대에서 발생한 ‘여순사건’을 진압한다는 명분 아래 시행됐다. 비상계엄하에 이뤄진 군경의 대규모 진압 작전으로 인해 약 1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이들 중 상당수는 재판 절차 없이 집단적으로 불법 처형됐다. 같은 해 11월17일, ‘제주 4·3사건’에 적용된 두 번째 비상계엄도 최소 3만여명의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희생시켰다.
이후로도 계엄령은 권위주의 정부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동원됐다. 1972년 10월17일 유신체제 시행을 위해 포고된 비상계엄하에서는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동되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이 광범위하게 침해됐고 수많은 양심수가 투옥됐다. 1980년 5월17일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은 광주 시민에 대한 무력 진압으로 이어졌고, 계엄군은 ‘공공질서 유지’라는 명목하에 수백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2024년 12월3일, 다시 한번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의 중대한 인권 위기를 마주했다. 국군방첩사령부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은 과거 사례들을 모델로 삼아 사전 설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선포된 포고령은 시민의 생명과 기본권을 탄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는 한국이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의 인권침해적 관행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선포된 계엄령들은 반복적으로 ‘공공의 안녕’이라는 명분을 빌려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러한 행위들은 중대한 국제인권법 위반이며, 이는 대한민국이 비준하고 가입한 주요 국제인권조약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에 따르면 비상상황에서도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며 생명권, 고문 금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등은 어떤 경우에도 제한될 수 없다.
그런데도 현행 계엄법 제9조 제1항은 “계엄사령관은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국가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시민의 권리를 사실상 전면 중지시키는 법적 근거로 작동했으며, 이는 자유권규약이 금지하는 자의적 권리 제한과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2024년 12월3일 자국민을 향해 “즉각 처단”이라는 위협적인 표현과 함께 선포된 비상계엄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반복해왔던 인권침해적 계엄 통치의 그림자를 다시 한번 드리웠다. 그러나 광장의 시민들은 응원봉 연대로 인권의 촛불을 더욱 밝게 비추었다. 이들의 저항은 단지 과거의 잔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넘어, 한국 사회가 계엄이라는 비상수단에 대해 새로운 인권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요구를 분명히 하는 선언이었다. 12·3 이후,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세대를 초월해 ‘계엄 트라우마’를 공유하게 됐다. 그 치유의 첫걸음은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계엄법의 전면 개정이어야 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오는 5월18일부터 계엄법 개정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