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술이 탄생한 자리, 단양 수양개유적

2025-12-14

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대부분 사람은 구석기시대를 ‘원시적’이고 ‘초보적인’ 시대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인식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지구 46억 년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압축한다면, 공룡은 오후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고,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자정 직전 마지막 1분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1분의 대부분이 바로 구석기시대였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시대는 마지막 몇 초에 불과하다. 인류의 긴 시간을 고려하면 구석기시대야말로 인간의 삶과 기술이 가장 오래 축적된 시간이다.

이 긴 시간의 흔적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곳이 단양 수양개유적이다. 수양개유적은 한반도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일본·중국·몽골의 주요 유적과 비교되는 동북아시아 핵심 구석기 유적으로 평가된다. 안정적으로 쌓인 문화층과 기술 변화 양상은 당시 인류의 이동과 기술 전파를 살피는 데 중요한 기준 자료가 된다.

1983년부터 진행된 조사에서는 50여 개의 석기 제작소와 10만 점이 넘는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후기 구석기를 대표하는 돌날(石刃, Blade) 과 슴베찌르개(有莖尖頭器, Tanged point) 는 수양개유적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돌날은 몸돌(石核)을 다듬어 일정한 길이로 떼어내는 제작 방식으로,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면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정교한 기술이다. 슴베찌르개는 자루에 끼워 사용하는 사냥용 도구로, 효율적 사냥을 위한 구조적 이해와 기술적 응용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은 후기 구석기 사람들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환경을 이해하고 도구 제작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음을 증명한다.

유적에서 수습된 숯을 대상으로 방사선탄소연대측정(Radiocarbon Dating)을 실시한 결과, 수양개유적은 약 4만 5천 년 전부터 1만 7천 년 전까지 수만 년 동안 반복적으로 석기를 제작한 공간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지형 조건과 석재 공급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곳을 선택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도구 제작 기술을 발전시키고 전승한 중요한 기술적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수양개유적은 후기 구석기인들이 기술을 다듬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며 전통을 이어가던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석기 제작의 현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수양개유적의 활용도는 아직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보기 어렵다. 연천 전곡리유적과 공주 석장리유적이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 온 것과 비교하면, 수양개유적은 이제 그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하는 단계다. 석기 제작과 사냥 도구 만들기, 야외형 구석기시대 체험 프로그램 등이 마련된다면 학술 가치뿐 아니라 지역 문화의 매력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충청북도 단양군에는 수양개유적뿐 아니라 금굴, 구낭굴 등 구석기시대 동굴유적, 삼국시대 접전의 흔적을 품은 단양적성과 신라적성비, 온달산성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자리한다. 남한강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존재하는 이 유산들은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적 깊이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앞으로 충청북도가 이러한 자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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