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국회 권력과 필터 버블

2025-10-26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는 고층 건물이 없다. 하얀색 연방의회 의사당 돔 지붕 위에 서 있는 콜럼버스 동상보다 높은 건축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1910년 개정된 ‘건물 높이 제한법’이 약 49m를 기준으로 제시하면서, 의사당 건물은 제1의 권력을 과시하듯 권력 도시 워싱턴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의회 권력 과시의 욕망은 워싱턴에서 멀리 떨어진 이 땅에서 기이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철을 맞은 우리 국회는 요즘 행정부 피감기관들을 호령하고 사법부를 윽박지르느라 바쁘다. 국회라는 조직체의 어원인 말하기(프랑스어 parler에서 비롯된 parliament)는 우리 국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말 대신에 고함과 핀잔, 꾸중과 벌 세우기가 난무할 뿐이다. 오직 의회 주권만이 신성하다. 삼권 분립은 시들어 가고 있다.

‘디지털 필터 버블’에 갇힌 개인들

이견보다 자기 확신의 덫에 빠져

권력을 위해 이를 자극하는 정치

개인들이 주체성 회복해야 해결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의원들의 폭주가 이어지는 데에는 정치권력과 글로벌 테크 기업들 사이의 우연찮은 협업과 그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가 작동한다고 본다. 오늘날 모든 개인은 아마존,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쳐놓은 디지털 필터 버블 속에 갇혀 살아간다. 개인의 하루는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트와 동영상, 쇼츠로 채워진다. 나와 다른 의견, 취향은 걸러져서 내게 도달하지 않는다. 오직 내 입맛과 취향을 자극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정치 권력자들은 필터 버블에 갇힌 지지자들을 자극하기만 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적대 세력은 물론이고 사법부마저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굴복시킬 때 필터 버블 속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결국 필터 버블을 매개로 해서 빅테크는 돈을 벌고 의원들은 권력을 유지한다. 그 사이 민주주의는 멍들어 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빅테크, 필터 버블, 정치권력의 관계를 살펴보자.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시총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어서 2014년 애플이 1위 기업을 이어받고 메타, 아마존, 구글이 세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세계는 개인들의 행위에 대한 세밀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윤을 올리는 행위 기반 데이터 자본주의가 본격화되었다. 빅테크 기업들은 개인들의 일상 행위(먹고 마시기 쇼핑하기, 온라인 친구들과 수다 떨기와 좋아요 누르기)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개인들은 무료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를 사용하는 대가로 삶의 시시콜콜한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제공한다. 빅테크 기업들은 인간 행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광고로 수입을 올리거나 물건을 팔고(메타, 아마존), 디지털 세계가 펼쳐지는 스마트폰을 팔아(애플) 막대한 이윤을 남긴다.

그러는 동안 개인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구동하는 알고리즘이 설정해 놓은 반향실에 갇혀 사는 신세가 되었다. 평균적 한국인이 하루 2~3시간을 소비하는 유튜브 콘텐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유튜브 시청의 70~80%는 알고리즘이 개인 맞춤형으로 추천하는 콘텐트다. 개인의 성향을 충족하는 정보, 뉴스들만 선별적으로 제공된다. 이견은 삭제되어 보이지 않는다. 필터 버블 안에서는 오직 믿음만 강해진다.

여당 지지 성향의 필터 버블 안에서는 대법관을 26인으로 늘리든, 36인으로 늘리든 열광의 박수만 이어진다. 토론은 사라지고 오직 사법부의 문제를 들추는 쇼츠들만 난무한다. 대법원 개편에 앞장서는 의원들의 언행은 필터 버블 안에 갇혀 있는 여당 훌리건을 향한 몸짓일 뿐, 평균적 시민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허약해져 간다.

빅테크들만이 데이터로 우리 삶을 옥죄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욕심 많은 데이터 국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개인들의 생체, 경제사회 활동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관해 왔다. 평균적인 자유주의 국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고 치밀하게 시민들 개인의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개인 스마트폰과 무선 통신회사를 통해서 우리가 어딜 가고 몇 시에 누구와 만나서 시간을 얼마나 보내는지까지 세밀하게 추적하고 관리하기도 했다.

지난달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일어난 불의의 화재는 데이터 국가의 보안이 취약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데이터 재난의 예비 경보였다고 할 수 있다. 전자 신분증, 우체국 금융처럼 사활적인 데이터 복구가 지연되면서 관련된 이들의 일상은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어쩌면 정당들과 현대국가라는 권력체들은 이미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적응을 마쳤다고도 할 수 있다. 필터 버블에 갇혀 있는 개인들을 자극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할 뿐 공공의 이익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정당들.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치력을 강화한 국가. 결국 요체는 모든 권력의 원천이어야 할 개인들의 반격은 언제 어떻게 가능할까의 문제이다. 데이터 주권 운동, 디지털 정체성, 탈중앙화 운동 등에 희망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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