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천천히 좀 가자. 무릎에서 소리 나.”
나는 요새 밥 먹으러 가면서도 우는 소리다. 단골집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단을 오르는데도 삐그덕, 찌그덕 무릎이 운다. 눈물이 찔끔 나올 때도 있다. 고작 한 계단 오르면서도 중간에 멍하니 서 있는 때가 있다. 힘들다. 매년 더하다.
유품정리사란 직업을 오래 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이다.
고독사 현장 바닥에 눌러붙어 있는 부패물들을 수습하면서 처음에는 쪼그려 앉아 일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허리가 아파졌다. 그러자 무릎을 꿇고 일을 하는 습관이 들었다. 결국 무릎이 나갔다.
결국 쪼그려 앉지도, 무릎을 꿇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일도 계속해야 하는 신세다.
쉬는 날엔 무릎과 허리를 강화하는 운동을 하고 병원에도 다닌다.
그럴 땐 조금 나아지나 싶다가 일을 다녀오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렇게 무릎이 아프다 보면 4~5년은 지난 그때 현장이 떠오른다.
50대 초반 남성의 고독사 현장이었다.
고인은 2주가 지나고서야 옆집 이웃의 신고로 발견됐다.
현관 문턱이 높은 게 다행이었다.
찰랑찰랑 할 정도로 고인 부패물이 집 바깥으론 흘러나오지 않았다.
바닥 타일에 스며든 시취를 제거하려면 독한 약품을 써야 한다.
한 번엔 안 되고 여러 번 세척해야 한다.
복도까지 흘러나왔으면 이미 악취도 악취이거니와 소독 작업 자체가 쉽지 않다.
이웃 여러 명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유품은 많지 않아보였는데 당시로선 내가 처음 보는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아, 이게 무릎보호대인 모양이네. 많기도 많다.”
고인의 작은 행거엔 각 건설현장의 조끼와 안전모, 그리고 수십 개의 무릎보호대가 걸려 있었다.
“이거 살 돈이면 병원엘 다니시지….”
그땐 내가 참 뭘 모르고 한 소리였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건설 노동자에게 병원 가서 치료 받지 않고 뭐했냐니….
아니, 솔직히 그것보다 무릎이 아프다는 게 어떤 건지를 내가 몰랐다.
그때는 허리고 무릎이고 멀쩡해서 짐을 지고 계단도 펄펄 날아다녔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내 허리가 굳고 무릎이 시리다.
이제야 고인께 죄송한 마음을 더하며 반성한다.
그게 얼마나 무지하고 무책임한 말이었는지….
병원에 간다고 무조건 나아지는 게 아니고, 한두 번 만에 무슨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다.
덜컥 수술이라도 했다간 몇 달은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된다.
노동하는 육체가 유일한 자본인 이들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아프고 나니까 알게 된 그야말로 ‘뼈 아픈’ 진실이다.
당시 싱크대에는 먹고 올려둔 햇반 용기와 참치캔 깡통이 있었을 뿐이다.
냉장고에는 바닥을 보이는 생수병 하나뿐이었다.
작디작은 냉장고였지만 텅텅 비어 있으니 괜시리 커보이기까지 했다.
TV장 위 고지서들을 쓸어담고 서랍을 열었다.
몇 가지 작은 생필품들 위에 편지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5만원권 지폐 6장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계속)
“이번 달 마지막 월세입니다”
그 뒤의 편지를 읽은 나는 화가 울컥 치솟았다.
죽기 전까지 먹은 거라곤 햇반에 참치캔 하나가 전부였던 이,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걱정한 것은 ‘집세’였다.
그 선하고 고독한 자의 뒷이야기,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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