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중심으로
우리는 어떤 사회지도자에 대하여는 한없는 존경과 흠모를 하지만 어떤 지도자에 대하여는 한없는 경멸과 조소를 하기도 한다.
존경받는 지도자란 어떤 지도자인가.
위상과 지위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도자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고 본다.
사회지도자의 도덕적 책무! 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우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넘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지도자를 존경한다.
이희영과 그 형제들은 선조 때 백사(白沙) 이항복의 후손들이다. 대대로 정승과 관서 등 고관대작을 지냈고 부친도 이조판서를 역임한 집안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되자 6형제가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이전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투쟁에 앞장섰다.
당시 처분한 재산은 4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 돈으로 대략 2조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그 6형제와 자식들은 독립투쟁과정에서 죽거나 투옥되었고, 6형제 중 해방 후 무사히 귀국한 사람은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부통령뿐이다.
조선최고의 명문대가 중의 한가문인 이희영과 형제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선도적 인물들이고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존경한다.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안동에 임청각(臨淸閣)이 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로 9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하였다. 석주 이상룡 선생도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경주 최부자집은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간 부를 이어온 10대진사, 12대 만석꾼의 아주 드문 집안이다. 흔히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사례이다. 경주 최씨 집안의 오랜기간 지속하는 부는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만석 이상의 재산을 쌓지마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마라’ ‘사방백리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하라’등 6가훈(家訓)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된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의 예를 다른나라에서 살펴보면, 고대로마에서 집정관은 선출직의 최고위직이다.
그런데 제2차 포에니전쟁(한니발 장군으로 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전투 중에 사망한 집정관이 13명이 된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역사상 재위기간(1952~2022)이 최장인 왕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주시절에 제2차 세계대전에 운전병으로 직전 참전하였다.
또한 1980년경 엔두르왕자는 전투헬기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즈정신이 영국국민이 왕실을 존경하고 또한 왕실제도의 존속이유가 아닐까?
6·25 전쟁 중에 미군은 전사만 해도 3만6천명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 아들과 클라크 대장을 비롯한 139명의 장성자제가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즈의 실천이다.
반면 사회지도자로서 부귀를 누리면서 사회적 책무를 저버린 자들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숱하게 많다.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라고 한다. 1901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되었을 때 조선조의 왕실 고관대작 76명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귀족작위칭호를 받고 천문학적인 은사금을 챙겼다.
2006년 KBS가 자산규모 20조원이 넘는 국내7대재벌 그룹 총수일가를 조사한 결과 병역의무대상자 175명중 면제자가 48명으로 면제율은 33%에 달했다. 일반인의 지난 30년간 평균면제율 6.4%보다 5배나 높은 수치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아들은 허리디스크로 또다른 재벌그룹의 자는 과체중으로 담당결제로 다른 그룹의 회장자젤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각자 이유는 있겠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 총리, 비서실장 국정원장, 장관 등 상당수가 병역면제자이기도 하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즈 로마인이야기 저자 시오노나다미는 이렇게 말했다.
‘지성은 그리스인 체력은 캘트인과 게르만인, 기술력은 에트투리아인,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어떻게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노블레스 오블리즈에서 찾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이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지도자는 어떤 가치 위에 서야 하는가?” 부와 권력은 특권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다. 공동체를 위해 먼저 나서고, 본보기를 보일 때 사회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게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지도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약속이다.
양승조 <다잘세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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