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역시 음악은 사람이 만들어야 제맛

2025-03-18

몇달 전 한 오케스트라에서 ‘콘서트 프리뷰’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콘서트 프리뷰란 연주회가 시작하기 약 20분 전, 해설자가 무대에 올라 그날 공연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객이 연주를 듣기 전 설명이 필요할 때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곡이 연주되길래 콘서트 프리뷰가 필요한지 궁금했다. 내가 소개해야 하는 음악은 바로 ‘베토벤 교향곡 10번’이었다. 무척 놀랐다. 베토벤의 교향곡엔 10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18세기 고전주의 시대의 정점을 찍고, 또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문을 활짝 연 음악가다. 그 중심엔 그가 작곡한 9개의 교향곡이 있다. 그 음악들은 교향곡이란 장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뤄냈다. 특히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은 걸작 중에서도 걸작으로 여겨진다. 인류애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연말이 되면 전세계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하며, 바그너는 베토벤 교향곡 9번 이후의 교향곡은 바보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베토벤 하면 교향곡이 상징적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베토벤 교향곡 10번의 정체는 무엇일까? 베토벤은 열번째 교향곡을 구상했으나 아주 단편적인 음악 스케치만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2020년, 독일 통신사 도이체텔레콤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한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이른바 ‘베토벤×인공지능(AI) 프로젝트’로, AI로 교향곡 10번을 작곡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었다.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는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분량이 적었다. 12초 정도 연주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프로젝트에 참가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베토벤의 9개 교향곡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다른 작품들도 AI에 학습시켰다. 마침내 2021년 10월9일, 베토벤의 고향 독일 본에서 교향곡 10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나는 어서 실연을 접하고 싶었다. 물론 그 음원을 미리 들어봤지만 실제로 듣는 음악은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드디어 당일, 무대 리허설을 통해 음악을 들어봤다. 20분 정도의 교향곡 10번을 들은 후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역시 음악은 사람이 작곡해야 제맛이다.’

음악은 굉장히 어색했다. 음악에서 감정이 전달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베토벤의 음악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바둑 AI 알파고와 대결했던 이세돌 9단이 “사람의 심리가 느껴지지 않아 대국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영향력이 더 커질 AI가 클래식과 만나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함께 공존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실험이자 미래의 방향을 그려보는 이벤트일 뿐이었다. 나는 콘서트 프리뷰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하며 무대를 내려왔다. “역시 음악은 사람이 만들어야 제맛입니다.”

나웅준 콘서트가이드·뮤직테라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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