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의 도시에는 외부와 통하는 거대한 성문이 있었다. 아무리 많은 물자가 있어도 성문이 닫히면 도시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기업들이 맞닥뜨린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고도 검증과 신뢰가 없으면 시장의 문을 결코 열 수 없다.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시험인증'이다.
국내 A사는 고성능 진공단열재를 개발했지만 객관적 성능 입증이 없어 양산과 판로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공인시험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의 시험·평가로 열전도율과 내열성을 증명하자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매출은 2023년 182억원에서 2024년 250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특허 2건·고용 6명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시험인증이야말로 혁신을 현실로 만드는 해답임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지난 2023년 기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 수준에 속한다. 그러나 연구개발(R&D)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은 10~2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R&D 투자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성과를 이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위치한 것이 바로 시험인증이다.
시험인증은 단순한 기술과 제품의 평가 절차가 아니라 기업, 정부, 소비자 모두에 신뢰를 제공하는 시장 진입 인프라다. 시험인증을 통해 기업은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정부는 기준을 구축할 수 있으며, 소비자는 검증된 기술을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시험인증은 기술혁신을 사회적, 경제적 가치로 바꾸는 힘으로 작용한다.
KCL은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이 같은 인프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는 안전성 시험을 통해 양산과 기술개발의 기반을 마련했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태양광 모듈과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성능 평가로 해외 시장 진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인·허가 절차를 돕고, 방산 분야에서는 첨단 기술의 환경 내구성 시험을 통해 무기체계 적용을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인공지능(AI)·디지털 의료기기·사이버보안·데이터 품질 등 새로운 분야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시험인증 역시 새로운 수요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KCL은 특히 AI 알고리즘의 신뢰성 검증, 디지털 의료기기 소프트웨어(SW)의 안전성 평가, 사이버보안 SW 적합성 시험, 데이터 품질과 개인정보 보호 검증 등 신기술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시험·평가는 기업이 디지털 기술력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발판이 될 것이다.
아울러 KCL은 기업이 기술개발 이후 사후적으로 평가만 받는 수준을 넘어, 개발 초기부터 특허와 발명 단계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이를 사업화로 연결할 수 있도록 선행적 지원을 강화하며 기업을 돕고 있다. 신제품 인증(NEP), 건설신기술 지정, 우수조달제품 지정, 나아가 수출바우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도와 연계해 기업이 규제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원은 기업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처음부터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기술을 준비하게 하는 중요한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혁신이 국가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시험인증-사업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시험인증은 혁신 기술을 실질적 성과로 이어주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연결자가 될 것이다.
결국 R&D와 시험인증의 연결이야말로 기술혁신과 사업화를 여는 열쇠다.
천영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원장 kclpr@kcl.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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