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의 파스퇴르' 故 이호왕 교수, 과기계 '황금별'로 영원히 빛나길

2024-07-03

'들쥐 내장 샘플에 환자의 항체가 있는 혈청을 반응시키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니 밤하늘 은하수 같이 노란 별이 반짝였다.'

1975년 바이러스에 감염된 들쥐 허파 조직을 들여다보던 이호왕 고려대 교수는 형광색소를 넣은 감마글로불린(면역단백질)이 형광빛을 내는 것을 발견했다. 아르키메데스가 외쳤던 '유레카'의 순간이다.

'한탄바이러스'가 괴질의 범인이라고 밝혀낸 이 교수는 5년 뒤 집쥐(시궁쥐)에서 또 다른 '노란 별'을 발견했다. 서울 마포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쥐를 잡은 뒤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말을 듣고, 쥐를 잡아 확인한 결과 괴질의 '공범' 중 또 한 놈을 특정한 것이다.

'서울바이러스'다. 괴질이란 한 때 '유행성출혈열'이라 불린 콩팥증출혈열이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기에 한 번도 힘든 세계적인 '세렌디피티(뜻밖의 행운)'가 이 교수에게는 두 번씩이나 나타났을까?

191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낀 아무르(흑룡) 강 유역에서 처음 보고된 괴질은 전쟁을 따라 만주, 한반도까지 퍼졌다. 이로부터 30년 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는 풍토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범인이 한타바이러스 속인 것을 확인하고, 1982년 그 질병을 증상에 따라 '콩팥증출혈열(신증후군출혈열)'과 '심폐증후군출혈열'이라 명명했다.

한타바이러스는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속)이다.

콩팥증출혈열은 전쟁을 따라 퍼졌다. 소련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블라디보스톡까지 시베리아 철도를 깔았고,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횡단철도를 부설해 블라디보스톡을 연결했다. 콩팥증출혈열이 처음 보고된 지역이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던 수풀 속에 군인들이 무리지어 오랫동안 머물면서, 들쥐의 질병이 소련군·관동군에게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이 병은 한국전쟁 때 중공군을 따라 한반도로 내려왔다. 중부전선에서 유엔군과 중공군을 괴롭힌 이 병은 한반도에 자리잡았고, 군대는 이를 세균전으로 의심하기도 했다. 관동군 731부대는 인체실험으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미군도 병의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이런 콩팥증출혈열 질병사를 보면 왠지 낯설지 않다. 최근까지 온 세계를 괴롭혔던 코로나19와 상당히 비슷하다. 둘 다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콩팥증출혈열은 들쥐에게서 옮았고, 코로나19는 박쥐에게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100년 전 콩팥증출혈열은 군부대를 따라 이동했고, 코로나19는 온갖 교통수단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한타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출혈열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러시아는 물론 서쪽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세계 각 지역을 휩쓰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콩팥증출혈열은 지금도 해마다 세계적으로 20만명이 넘는 환자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은 비록 '3급 감염병'으로 격하됐지만, 백신이 없던 시절 일본뇌염만큼 다들 두려워했던 전염병이다.

혹시 바이러스에 붙은 '한탄'이나 '서울'이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가 콩팥증출혈열을 한반도 풍토병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쥐가 잡힌 한탄강과 서울이라는 지명은 이호왕 교수가 자랑스럽게 붙인 'K-브랜드'다.

일본과 미국도 풀지 못한 과제를 해결한 한국의 이호왕 교수가 오롯이 고집했던 학명이다. 인류사적 난제를 해결해 '한국의 파스퇴르'라 불리는 이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처음 확인하고, 그 백신까지 개발한 세계적인 과학자 급으로 더욱 존경받아 마땅하다.

7월 5일은 이호왕 교수 서거 2주기가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유공자로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돼 있는 이호왕 교수가 한국 과학기술사의 '황금별'로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빛나길 바란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ojyoo@ka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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