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아의 MZ세대 찍어 먹기] 급할수록 돌아가라: 과정 없는 승리는 오래갈 수 없다

2025-05-13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당내 경선을 거쳐 정당한 절차를 통해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정당이라는 정치 공동체 안에서 공정한 규칙을 따르고 그 규칙에 기반을 둔 지지와 책임을 감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경선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덕수 전 총리가 느닷없이 출마를 선언하며 경선을 통과한 김문수에게 단일화를 요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이길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은 역사 곳곳에 반복되어 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 대표팀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보다 감독의 판단과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대표팀을 구성했다. 수월성을 기준으로 한다는 명분 아래 팀워크와 내부 신뢰는 무너졌고 결국 선수들은 훈련을 집단 거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결과는 국가적 망신에 가까운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축구는 단순한 기량의 경쟁이 아니라 팀 전체의 조화와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는 스포츠다. 과정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팀은 하나로 뭉칠 수 없고, 분열된 팀은 이길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절차를 무시한 정치가 얼마나 깊은 후유증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부통령이던 허버트 험프리는 단 한 번의 예비 선거(프라이머리)도 거치지 않은 채 민주당 지도부의 지지를 업고 대선 후보가 되었다. 반전 여론이 고조된 가운데 유진 매카시와 로버트 케네디 등이 프라이머리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지도부는 이를 무시했다. 당원과 시민들은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졌다고 격렬히 반발했고 시카고에서는 전당대회 기간 중 유혈 시위까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자신들의 텃밭이라 여겨졌던 남부 5개 주를 공화당에 내주며 닉슨에게 참패했다.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고 도덕적 결함이 컸던 대통령이라 평가받는 사람에게 권력을 넘긴 일이었다. 절차를 무시한 대가는 민주당의 패배로 끝나지 않고 민주주의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구조적 손실로 돌아왔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은 타협할 수 있지 않는가?” 이 물음은 정치적 판단의 순간마다 반복되는 유혹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러한 달콤한 제안에 쉽게 응하지 말아야 한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공정한 절차는 결과의 정당성을 구성한다고 했다.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승리는 아무리 매력적이고 효과적으로 보일지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승리는 승리를 이룬 순간부터 내파를 시작한다.

한덕수의 주장은 결과적 수월성에 기대고 있지만 그것이 절차적 정당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정당 민주주의는 하나의 공동체가 신뢰와 책임을 나누는 과정이다. 한 사회의 리더를 뽑는 과정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승리만 좇는 모습을 정당이 승인한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결과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셈이다. 이기기 위해 규칙을 무시하는 정치는 언젠가 규칙 없이도 지게 된다.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는 그저 들러리가 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그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이기는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 정치도 예외일 수 없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절차를 지켜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무너뜨림 없이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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