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기스면(鷄絲麵), 알고 보니 보통 국수가 아니었네...

2025-02-26

기스면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익숙한 이름의 중국 국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지는 않는다.

그러면 본고장 중국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국수일까? 그런 것만도 아니다. 중국에서도 역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평소 자주 먹는 국수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국수가 어떻게 이역만리 한국 땅에까지 퍼졌을까? 기스면이라는 이름의 국수, 이런 저런 면에서 흥미로운 구석이 꽤 많은 음식이다.

종류가 다양하기에 이것이 오리지날 기스면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기스면은 가느다란 국수 면발을 닭고기 육수에 말아 닭가슴살을 실처럼 가늘게 찢어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 그래서 이름도 닭 계(鷄) 실 사(絲) 국수 면(麵)자를 써서 계사면(鷄絲麵),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 지스멘이다. 기스면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산동 사투리다.

그렇다면 기스면은 중국 산동성에서 전해진 국수인가 싶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직접 맛보지 않아 확언할 수는 없지만 산동 기스면은 면발이 훨씬 두껍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기스면의 모양새는 오히려 산동지역 별미라는 금실 국수, 금사면(金絲麵)에 가깝다.

그중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사천 기스면이다. 이 국수는 계란으로 반죽한 밀가루로 국수를 뽑고 먹을 때 닭고기 등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 특징은 우리나라 기스면처럼 닭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 국수가 아니라 비벼 먹는 비빔국수이고 그런 만큼 따뜻한 국물과 함께 먹는 온면이 아니라 따뜻하지 않은 국수인 량면(凉麵)이다. 그래서 사천 기스면을 현지에서는 사천 계사량면(鷄絲凉麵)이라고 부른다.

사천 기스면은 원래 북경, 다시 말해 청나라 때 황실 음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청나라가 망하고 원세개가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을 때 원세개의 전속 요리사가 청나라 황실 주방의 기스면 요리비법을 배웠다. 이후 원세개가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자 전속 요리사도 고향인 사천성으로 돌아가 음식점을 차렸다. 이때 내놓은 간판 요리가 황실 음식인 기스면, 다시 말해 계사량면이었고 이 국수가 발달해 지금의 사천 계사량면이 됐다는 것이다.

기스면이 원래 자금성에서 먹었던 국수였다는 말이니 북경에도 당연히 북경식 기스면이 있다. 북경에서는 주로 참깨 소스에 비벼 먹는 깨장 기스면(芝麻鷄絲凉麵), 북경식 짜장에 비빈 짜장 기스면(京酱鷄絲凉麵)을 먹는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먹는 기스면과는 한참 다르다.

대만에도 기스면이 있다. 가늘고 긴 면발을 닭고기 육수에 말아 먹으니 우리가 아는 기스면과 얼핏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대만 기스면은 삶은 국수 면발을 기름에 살짝 튀긴 후 보관했다가 먹을 때 다시 삶아서 먹는다는 점이다.

우리한테는 낯선 국수 조리법이지만 중국에는 광동의 이부면(伊府麵)을 비롯해 이런 국수 종류가 꽤 있다. 무덥고 습한 지역에서 국수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튀김국수인 대만 기스면이 현대 음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1958년 대만 화교출신의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했을 때 대만 기스면에서 그 제조법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그럴만한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청나라 말, 음식 사치로 유명했던 서태후의 서른 한 살 아침 생일상이 차려졌다.

디저트를 포함해 모두 24종의 요리가 차려졌는데 이중 일곱 가지가 값비싼 바다제비집을 소스로 조리한 요리였다. 그만큼 사치스러운 아침 생일상이었다는 소리다. 이런 아침상을 받은 서태후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기스면이었다. 서태후를 모셨던 비서실장이 남긴 『어향표묘록』에 나오는 기록이다. 조리법은 적혀 있지 않으니 어떤 종류의 기스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서태후는 왜 호화로운 아침 생일상의 식사를 기스면으로 마무리했을까?

중국에서 기스면은 일반 가정집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家常菜)이라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먹기도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 먹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양의 치킨 누들처럼 감기에 걸렸을 때 혹은 앓고 난 후 회복음식 내지는 기력을 찾는 음식으로도 먹는다.

대단할 것도 없는 기스면인데 왜 그렇게 특별 취급을 할까 싶은데 이유는 주재료가 닭고기 내지는 닭 육수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닭을 양기가 넘치는 새(陽鳥)로 여겼기에 양기를 보충해야 할 때는 닭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다. 우리나라 삼계탕도 그런 경우다. 서태후가 하고 많은 요리 중에서 생일상의 마지막을 기스면으로 마무리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기스면, 알고 보니 이래저래 흥미로운 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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