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에게 생중계된 12·3 내란의 현장. 국회를 무장 군대와 경찰로 유린하는 비극을 목격한 건 충격이었다. 권력을 쥐여 준 국민을 겁박하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괴물 같은 독재자를 영화 속에서 본 적은 있지만, 거의 반세기가 지난 2024년에 다시 보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게 대통령이냐.’ 이게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대통령이 벌일 짓인가. 이해 불가 초유의 사태다. 헌법주의자라던 자가 헌법을 유린하고, 의회주의자라는 자가 국회를 ‘범죄자 소굴’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여겨 척결 대상으로 삼았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은 선행 자백을 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야당을 겁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비상계엄 선포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대신 군부독재 시대의 군홧발을 먼저 떠올렸다. 평소 즐겨하던 어퍼컷 세리머니가 국민을 향한 한 방, 주먹질임을 알아채는 데 3년이 걸렸다.
겁박의 대상으로 야당을 꼭 짚어 말했지만, 겁주려 했던 곳이 더 있다. 사법부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사법 마비’를 두 번이나 언급했다.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다. 사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헌법 제77조 3항에 따라 비상계엄 선포 시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포고령 1호에 법원의 권한에 관한 특별 조치는 없었지만, 대통령의 인식 속에는 사법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보고 듣고도 사법부는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사법부의 수장 대법원장은 비상계엄 선포가 해제된 지난 4일 출근길에 “이런 어려울 때일수록 사법부가 본연의 임무를 더 확실하게 하겠다”라며 “본래의 역할이 재판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장도 계엄 해제에 안도하면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겨우 이것뿐이었다. 대통령이 사법 업무와 사법 시스템이 마비되었다고 판단하고 전 국민을 향해 사법부의 위상과 권위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음에도 원론 수준의 태도 표명뿐이다. 명예훼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전직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이 체포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데 더욱 발끈하고 분노해야 할 일 아닌가. 겁먹은 것일까. 아니면 사법부 스스로 재판을 잘못해왔고, 사법 시스템이 마비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인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이 사법 마비로 보는 이유를 짐작해 본다. 장모 최은순에 대한 법정구속과 사문서위조죄 등 유죄판결을 내리자, 사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검사 때를 못 벗은 대통령은 야당 대표 이재명이 기소당했으니 당연히 유죄로 추정되고 정적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위증교사’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니 심사가 뒤틀렸을 것이다. 그래서 사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고 사법부에도 경고장을 날렸다. 이러한 사법권 간섭과 침해 우려에 대해 사법부 수장이 별말 없으니 구성원도 조용하다. 법관회의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 그나마 정치적 독립을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사법부마저 그래선 안 된다. 위헌·위법 비상계엄 선포자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 공개 질의해야 한다. 누가 판사를 어떻게 겁박했는지, 대체 왜 사법 업무가 마비되고 사법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본 건지, 그래서 계엄선포가 성공했다면 법원에 어떤 특별한 조치를 하려 했는지를. 수사해서 기소되면 그때나 판결로 말하겠다며 침묵할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