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봄이 떠오릅니다. 파스텔 톤의 따스한 색상과 부드러운 곡선들이 더해져 마치 로맨틱한 봄날을 옮겨 놓은 듯한 그의 작품은 화사하고 또 화려해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넘나들며 다방면으로 활동한 무하는 예술뿐만 아니라 극장 포스터, 삽화, 광고, 장식 패널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죠. 특히 그는 아르누보(Art Nouveau) 운동의 선두주자이자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르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이란 뜻으로 특정 시스템이나 원칙을 따르지 않는 독특한 예술 운동이었어요.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정치적·사회적·기술적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낡은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현실을 수용할 필요성을 느꼈죠.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탄생한 아르누보는 회화·조각·그래픽 아트·건축·장식 예술 등 시각 예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무하의 독창적인 스타일, 이른바 '르 스타일 무하(Le Style Mucha)'는 슬라브 민족적 모티프와 결합하며 아르누보 운동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자 19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죠.

이렇듯 무하는 순수미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무하의 포스터·삽화 등은 당시에도 단순한 광고물이 아닌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해져요. 당시 거리를 '야외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죠. 무하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통해 도덕적 이상과 정신적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노력했으며, 이런 신념은 말년까지 이어졌어요. 프랑스와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후 조국으로 돌아간 그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주제로 한 대작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 제작에 몰두하는 등 체코 국민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처럼 예술을 넘어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에도 기여한 무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아르누보의 꽃: 알폰스 무하전'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7월 13일까지 열려요.
이번 전시는 무하가 프랑스에서 얻은 성공과 명성을 넘어, 그의 예술과 철학이 체코 민족 정체성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데요. 특히 오리지널 포스터, 판화, 드로잉, 유화, 도서 간행물, 디자인 장식 오브제 등 300여 점의 작품을 통해 무하의 예술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삽화가로 활동했던 무하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롤로그로 시작해 1부 '뮤즈가 건넨 붓, 화가가 그린 전설', 2부 '아르누보의 꽃', 3부 '무하 오디세이', 4부 '슬라브의 화가' 섹션으로 이어져요.

먼저 프롤로그에서는 전통적인 미술 교육과 당대의 새로운 예술을 두루 경험하며 성장한 무하의 섬세한 드로잉 실력과 장식 감각을 감상할 수 있죠. 1부 '뮤즈가 건넨 붓, 화가가 그린 전설'은 제목 그대로 무하에게 결정적 전환점을 가져다준 전설적인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다루는데요. 사라 베르나르가 출연한 연극 포스터를 그리면서 예술적 전환기를 맞은 무하의 여러 작품을 만나볼 수 있죠. 무하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연극 '지스몽다(Gismonda)' 포스터는 단순한 구성의 이전 포스터와 달리 파격적인 세로형 디자인으로 세밀한 장식과 신비한 분위기의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죠. '지스몽다' 포스터가 파리 전역에 등장하자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해요.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아름다운 포스터를 떼어 가지고 가는 일이 이어지며 무하는 파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로 올라섰죠. 이후 무하는 6년간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를 비롯해 무대의상·액세서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신비로운 여성상과 장식적인 구성을 담은 무하의 작품은 곧 '무하 스타일'이라 불리면서 유럽에서 찬사를 받았다고 해요. 특히 화려한 색채와 유기적인 곡선으로 여성을 더 아름답고 생기 있게 표현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죠.
다음으로는 스타 아티스트로 도약한 무하가 여러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힌 시기를 조명한 섹션 아르누보의 꽃'이 펼쳐져요.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대중 소비문화가 빠르게 성장하던 때였죠. 무하는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새로운 광고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아요. 특유의 '무하 스타일'은 제품 홍보를 넘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대중의 감성을 자극했죠. 특히 광고 포스터 속 여성은 단순한 모델이 아닌, 브랜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어요. 한 예로 '모엣&상동' 광고에서는 샴페인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우아한 곡선의 드레이프 의상을 입은 여성을 등장시켜 제품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했죠.

이 섹션에는 광고 이미지뿐만 아니라 잡지 표지, 달력, 장식패널 등 여러 분야에서 꽃 피운 무하 스타일 작품들이 전시됐어요. 무하는 제품 기능을 직접 부각하는 대신, 브랜드가 추구하는 감성과 분위기를 형상화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이 시기에 무하는 포스터나 달력을 넘어 자신의 작품을 장식 요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장식패널 작업에도 몰두했는데요. 인쇄 판화 형식으로 복제할 수 있는 패널은 대중에게 보다 쉽게 보급됐고, 가정·공공장소 등에서도 널리 활용됐죠. 이를 통해 무하는 예술이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널리 향유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 섹션에는 특히 무하 스타일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황도 12궁'이 전시돼 있는데요. 사라 베르나르를 중심으로 12개의 별자리를 표현한 이 작품은 태양이 움직이는 길을 형상화한 그림으로 우리가 잘 아는 타로에도 등장해요. 또 무하가 작업한 식품회사 네슬레의 광고도 볼 수 있는데요. 네슬레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60주년을 기리기 위해 만든 광고로 무하는 여왕의 초상화를 각기 다른 연령대 모습으로 표현해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죠.

다음 섹션은 작품성과 상업적 성과까지 모두 얻은 무하가 슬라브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무하 오디세이'입니다. 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의뢰를 받아 1900년에 열린 파리만국박람회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관을 장식하는 작업을 맡았는데요. 이곳에서 그는 장식적인 부분을 넘어 슬라브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프란츠 요제프 훈장을 받은 무하는 슬라브 민족을 억압한 제국을 도왔다는 사실에 복잡한 심경을 갖게 되죠. 이를 토대로 무하는 훗날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라는 대작을 남기게 됩니다. 이렇듯 무하가 조국 체코를 위해 무언가 할 기회를 적극 모색하는 시기와 관련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놨어요. 그중 '비스코프 상공업 민속 박람회' 포스터는 체코 모라비아 지역의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을 내세워 당시 주목받았다고 해요. 의상뿐 아니라 데이지 등 곳곳에 모라비아를 상징하는 여러 요소를 반영함으로써 무하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죠.
4부는 미국에서 체코로 귀환한 무하가 자신의 숙원인 '슬라브 서사시'에 집중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슬라브의 화가'를 주제로 꾸몄습니다. 무하는 조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공공 프로젝트와 국가적 기념 작업도 동시에 수행했어요.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하자 무하는 신생국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의뢰를 받고 국가 지폐와 우표 디자인에도 참여했죠. 무하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지폐와 우표 디자인을 무보수로 제공했으며, 우표 제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만 청구했을 뿐 별도의 저작료를 받지 않았다고 해요. 또 관공서 서식, 경찰 제복 디자인 등 다양한 공공 디자인 작업에도 사비를 들여 참여하는 등 신생 공화국의 이미지 구축에 크게 기여했죠. 무하는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국민의 정신에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며 돈이 아닌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이 작업에 임했다는 소감을 전한 바 있습니다.

무하는 프라하 성 내 성비투스대성당(St. Vitus Cathedral)의 스테인드글라스 도면 제작에도 참여했는데요. 체코의 수호성인들과 위인들이 등장해 신생국가의 정신이 상징적으로 담긴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당대의 여러 저명한 예술가들이 디자인했으며, 무하는 북측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을 맡았다고 알려졌죠. 무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가마에서 구워내는 기법을 적용해 색의 선명함과 지속성을 높였으며, 이를 통해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 회화적 표현을 강조했어요. 스테인드글라스 하단에는 슬라브 민족을 의인화한 슬라비아(slavia) 이미지를 배치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드높이는 효과를 자아냈죠.
이뿐만 아니라 상업 포스터 대신 슬라브 민족 간 연대를 지향하는 포스터,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기념과 같은 공익 포스터 제작에 몰두하며 단결과 독립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무하는 훗날 "예술가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화합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밝혔죠. 이렇듯 4부에서는 단순한 예술을 넘어 억압받던 슬라브 민족에게 민족 정체성과 독립의 희망을 불어넣은 무하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무하 작품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어떤 꿈과 희망을 품었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묘미일 것입니다. 또 키즈 아틀리에, 시즌 이벤트 프로모션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돼 있으니 참여해서 특별한 추억을 남겨보세요.

'아르누보의 꽃: 알폰스 무하전'
기간: 7월 13일까지
장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 마이아트뮤지엄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40분(입장 마감 오후 7시, 공휴일 정상 운영)
입장료: 어린이 1만4000원, 청소년 1만8000원, 성인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