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바람의 딸’ 한비야

“나는 한 번도 지구가 넓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찍이 기업가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부르짖었지만, 여행가 한비야(67)는 어려서부터 “세계는 절대 넓지 않다”고 믿어 왔다.
이유가 있다. 한씨는 꼬맹이 시절부터 세계지도와 지구본에 둘러싸여 살았다. 아버지가 선물한 지도를 보며 세계일주를 꿈꿨다. 신문사 기자였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세계를 무대로 뛰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어머니도 거들었다. 식탁보·침대보는 물론 벽지마저 지도가 들어간 것을 골랐다. 집 안 구석구석을 세계지도로 수놓았다. 꼬마 한비야는 언제라도 세계를 한 손에 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담임선생님이 “한국은 세계 변방의 작은 나라”라고 가르쳤다. 어린 한비야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지구는 둥글잖아요. 한국이 왜 변방이죠. 한국을 가운데 놓고 보면 분명 우리가 중심 아닌가요.”
그 꼬마가 커서 ‘바람의 딸’이 됐다. 오지여행가에서 시작해 국제구호전문가를 거쳐 대학교수까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왔다. 20~30대 여성들의 롤 모델로 주목받았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정부기구(NGO) 인물로 선정(시사저널, 2017)되기도 했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1996~98),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2005)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한씨에게는 늘 ‘바람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한데 그는 2001년 지구촌 난민을 돕는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을 맡으면서 ‘바람의 딸’을 잊기로 했다. 가난과 재해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그에게 여행이란 단어가 불러일으킬 오해 때문이었다. 자칫 ‘놀러 다닌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서였다. 100만 부 넘게 팔린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아직까지 나를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면, 오지여행가 한비야는 잊어주기 바란다.”
그는 이후 지구촌 재난 현장과 쭉 함께해 왔다. 2012년부터는 이화여대 교수로 학부생·대학원생에게 국제구호를 가르치고 있다. 이론과 현장의 결합이다. 그런 한씨가 ‘바람의 딸’로 되돌아왔다. 신간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아!』를 내면서다. 혈기 넘쳤던 봄과 여름을 거쳐 지금은 가을의 나이로 접어든 그가 그간의 여행길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다. 인생과 여행의 의미를 반추하는 에피소드가 한가득하다.
다시 ‘바람의 딸’이다. 시즌2쯤 되나.
“지난해 가을 네팔 4200m 고지를 트레킹하던 중 왜 그간 여행 이야기를 피해 왔는지 자문했다. 월드비전에 들어간 이후 여행 관련 인터뷰나 강의, 글을 한사코 사양해 왔다. 하지만 여행이 없었다면 긴급 구호 활동도, 대학교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여행을 왜 ‘흑역사’처럼 감추려고 했을까. 40년 베테랑 지구여행자의 보따리를 풀어보자고 결심했다.”
그간 얼마나 다녔을까.
“나는 늘 여행학교의 학생이었다. 발을 딛고 선 나라를 기준으로 총 105국을 다녔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여행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성장일기와 같다. 처음에는 하루 1개 도시 방문하기 같은 목표를 세웠다. 좌표 찍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구는 한 집이고,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흘리개 때부터 세계일주를 꿈꿨다.
“초등 2학년 때 그 꿈을 반 아이들에게 말했더니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중2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가세가 기울어지고, 중고교 수업료도 제때 낼 수 없었지만 여행에 대한 꿈을 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국제홍보회사에서 3년간 일한 다음에 사표를 내고 1993년 드디어 나만의 길에 나섰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76년 고3 졸업 직후 제주도로 ‘가출여행’을 떠난 거다.”
무슨 말인가?
“고등학교 때 조금씩 모은 저금을 털어서 바로 제주도로 갔다.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혼자 떠났다. 당시로선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이 제주였다. 배를 타고 가야 하니 그곳도 ‘해외’ 아닌가(웃음). 두 번째 잘한 결정은 주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세계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다. 짠순이, 왕소금 생활로 버텼다. ‘혼자서, 오지 위주로, 육로 위주만!’ 3원칙을 지켰다.”
집 빠꼼이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 되길
나를 키운 건 세계지도·일기·산
해외로 떠나라, 일기 짬짬이 써라
눈 열리며 달라진 자신 발견할 것
이후 월드비전에 들어갔다.
“세 번째로 잘한 선택이다. 세계여행 중에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들에게서 많은 도움도 받았다. 제가 빵 한 조각을 아끼면 그들의 하루가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물론 빈곤 자체를 단박에 뒤집을 수는 없다. 월드비전 긴급 구호 일을 하며 지구 전체의 아픔에 넓고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분야를 파고들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는 89년 시작됐다. 한비야는 배낭여행 1세대쯤 된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외국에 생소한 나라였다. 지금은 세계 2위의 ‘여권파워’를 자랑할 만큼 국경의 장벽이 낮아졌다. 한비야 또한 “40년 전에는 어디를 가나 희귀종처럼 비쳤는데, 요즘에는 ‘BTS 이모’라도 되는 양 엄지를 치켜세우고 외국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셀카도 찍는다.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이 이제 낯설지 않다.
“적극 환영할 일이다. 일단 나가야 비교 대상이 생긴다. 세계를 보는 젊은이의 눈이 열리고 마음도 커진다. 처음에는 유명 관광지 위주로 가겠지만 시간이 쌓이면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권하는 게 있다. 이왕이면 기록을 남기라고, 일기를 쓰라고 추천한다.”
여행일기를 말하는 것인가.
“여행 도중 짬짬이 단상과 생각을 적어두기 바란다. 초등 2학년 때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지금껏 일기 쓰기를 빠뜨린 적이 거의 없다. 보물 1호쯤 된다. 머릿속을 정리정돈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오늘의 나를 만든 세 가지 물건이 있다. 세계지도와 일기장, 그리고 산이다.”

등산 마니아로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녔다. 지금도 틈만 나면 집 뒤에 있는 북한산에 오른다. 여자로서도 아주 작은 222㎜ 작은 발이 세계를 누빈 ‘왕발’이 된 것도 등산으로 키운 체력 덕분일 것이다. 왼쪽 무릎이 닳고 닳아 아프지만 지금도 조심하며 다닌다. 산에 가도 아프고, 안 가도 아프다면 차라리 갔다 오고 아픈 게 더 이득이 아닐까.”
교수 생활은 어떤가?
“세계여행 덕분에 긴급 구호를 만났고, 긴급 구호 덕분에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국제구호와 개발협력을 가르친 지 벌써 14년째다. 전 세계 1억 명이 넘는 난민들을 공부한다. ‘난민촌 24시’ 체험학습도 필수다. 지금껏 1200명이 넘는 제자가 생겼다. 학생들 스스로 ‘한비야 키즈’라고 부르는데,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 또한 열심히 해야 한다.”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도 있다.
“2007년 개교 이후 쭉 교장을 맡아 왔다. 세계 시민의식을 배양한다. 지금껏 무려 660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지구촌’보다 ‘지구집’이란 말을 좋아한다. 지구는 한 집안이다. 아래층이 좋아야 위층도, 옆층도 편안하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몰라보게 높아졌지만 다른 나라나 세계 전반에 대한 이해는 아직 낮은 편이다. 환경·전쟁·기후·난민 등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다. 지난 20년간 이 일에 시쳇말로 영혼을 갈아넣었다.”
정말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내가 생각해도 경주마처럼 달려왔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는 퇴역 후 천천히 걷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 네덜란드 말 훈련장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다. 나를 두고 한 말처럼 들렸다. 목표와 성과를 향해 달려온 지난 시간이었다.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웠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집에 있는 빠꼼이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낫다’는 말에 100% 동의한다. 앞으로도 힘 닿는 데까지 구석구석을 다닐 생각이다. 2030년까지 대략적 일정을 세워놓았다.”
한비야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했다. 천주교 세례명 비야를 한자 ‘비야(飛野)’로 음역해 개명까지 했다. 들판을 날아다니겠다고? 천생 둘도 없는 ‘바람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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