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여권 평양 탈출극 짰다…정구왕 풀어준 북한의 속셈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2부-2]

2024-10-15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제2부-2〉 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요원의 증언③

3화. 억류 8개월 만의 평양 탈출극

1998년 10월 18일 일요일 오전. 북한 보위부 소속 반탐(反探)과장은 건조한 말투로 툭 던졌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밥과 된장국, 양배추로 만든 겉절이로 아침식사를 마친 직후였다. 국군정보사 소속 대북공작관 정구왕 중령은 귀를 의심했다. 그해 3월 중국 단둥(丹東) 자신의 거처에서 북한의 정보기관 요원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납치돼 평양으로 끌려와 8개월째 억류된 상태였다. “나간다”는 말은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귀환, 믿어지지 않았다. 피랍된 이후 북한에서 처형 당하거나, 강제노동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무기력한 전향자로 여생을 마칠 것이라며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뜻밖의 통보에 숨이 멈출 정도의 설렘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살아서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혹시라도 일이 틀어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정구왕을 혼란스럽게 했다.

간밤의 꿈이 떠올랐다. 아내가 아이들과 그네를 타며 정구왕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벌떡 깼다.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잠을 청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와 할머니가 또 꿈에 나타났다. 하얀 한복을 입고 미소를 지으며 “야, 이제 그만 가자”고 했다. 어둠 속에 깨어나 한참을 울었다. 꿈이 현실이 되려는 것인가.

북한에서 맞춰 준 양복을 입고 채비를 차리라고 했다. 평양 유적지 답사 때 “머리도 깎고 양복 채촌(採寸‧몸 치수 측정)도 하라”며 마련해 준 옷이었다. 반탐과장과 정구왕 납치에 직접 가담했던 북한 요원 한 명 등 3명이 호송에 동행했다.

반탐과장은 피랍된 정구왕을 매일 신문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그의 얼굴만 알고 이름도, 나이도, 고향도 전혀 모른다. 자신이 “반탐과장”이라고 해서 그렇게 알 뿐이었다. (※ 보위부는 북한의 정보·방첩기관으로 우리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며, 현재는 국가보위성으로 불린다)

정구왕을 포함한 4명이 탄 승용차는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러시아제 일류신(ILYUSHIN) 중형 수송기가 활주로에 대기했다. 비행기 안은 조종실 뒤로 의자 몇 개가 있었고, 옆으로 늘어진 의자도 한 줄로 길게 설치돼 있었다. 화물칸에는 토요타 승용차 4대가 실려 있었다. 반탐과장은 조종실로 들어갔고, 다른 두 명은 승용차 운전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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