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전주홍 지음
지상의책 | 300쪽 | 2만1000원
과거에는 유방암을 단순히 유방에 생긴 암, 즉 ‘해부학적 관점’에서 이해했다. 하지만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유방에 존재하는 세포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한 ‘분자적·정보적 관점’으로 전환을 통해 부작용이 많은 화학치료법으로 암세포를 제거하던 데서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없애는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졌다.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의학사를 ‘관점의 전환’이라는 프레임으로 살펴보는 책이다. 의사나 과학자, 획기적인 발견이나 발명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닌 ‘무엇을 질병으로 어떻게 해석했는지’로 접근한다. 병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결국 시대적·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질병을 해석하는 관점이 어떤 치료법의 개발로 이어졌는지 이해하는 과정은 첨단 의학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엿보는 단서도 된다.
책에선 시대순으로 고대의 신화·주술적 관점, 체액병리학을 지나 근대 의학의 포문을 연 해부병리학에 이른다. 몸속 깊은 곳에서 손상의 흔적을 찾는 해부학적 관점은 장기를 넘어 세포와 분자까지 범위가 세부화된다. 하지만 감기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른 것처럼 개인별 차이를 설명해내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오늘날 ‘정보화된 질병’ 관점에 이른다. 현대의학이 주목하는 ‘정밀 의학’은 환자 고유의 생물학적 특성과 라이프스타일, 환경 특성까지 고려해 최적의 치료법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환자의 암유전자 정보를 파악해 변이마다 다른 항암제를 처방하는 ‘암유전자 패널 검사’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방대한 의학사를 톺아보던 저자는 정작 마지막에 이르러선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과학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오늘날 의학의 도약은 더욱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의학 연구의 맥락과 의미를 잘 살펴보고 이해하는 ‘관점’의 중요성을 거듭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