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조지아주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한국인 무더기 구금’ 사태에 국내 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과 대미 투자 압박 등으로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 사업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
7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구금 인원 475명 가운데 한국인은 300여명으로 파악됐다. LG에너지솔루션 소속은 47명(한국 46명·인도네시아 1명), 합작사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은 약 250명이다.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인원은 구금되지 않았다. 현대차가 단속 사실을 미리 알고 직원들을 미리 대피시켰다는 이야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수 LG에너지솔루션 최고인사책임자(CHO)는 이날 현장 대응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며 “안전하고 신속한 복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날 고객 미팅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했다. 현대차도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미국 출장을 자제하라는 방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산업계는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는 한국 기업 사업장에서 대규모 단속이 벌어진 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노동자 보호를 이유로 취업 비자를 충분히 내주지 않고, 현지에서도 숙련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난처하다는 것이다.
A 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단속) 목적은 현지 채용으로 미국인들을 고용하라는 건데, 그렇게 해서 언제 공사기일을 맞출 수 있겠느냐”며 “이번 사건은 미국에 진출한 모든 기업들에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투자하라고 해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비자 문제 등에 대해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도체, 조선, 철강, 식품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기업이 미국 생산기지를 짓고 있는 만큼 산업계 전반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구축하기 위한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비자 면제 프로그램인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활용한 근무 단속이 강화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사내에 “ESTA를 활용한 미국 출장 때 1회 출장 시 최대 출장 일수는 2주 이내로 하고, 2주 초과 시 조직별 해외인사 담당자에게 문의해달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B 기업 관계자는 “안 그래도 대미 투자와 관련해 긴장감이 높은 상황인데 악재가 겹쳤다”며 “다른 기업들도 언제든 타깃이 될 수 있으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