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혐오할 때 중국은 추월했다…과학자들이 본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

2025-12-06

[주간경향] “중국에 있다고 하면 한국에 들어올 역량이 안돼서 중국에 있는 거 아니냐고 해요.”

“거기(중국)서 우리가 가르칠 것만 있지 배울 건 없는데 왜 가냐며, 자존심 상해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중국의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한국의 과학자들이 한국의 지인들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기저에는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지난 2월 한국리서치의 대중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이 중국보다 과학기술이 발전했다’는 응답이 48%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중국이 낫다’는 응답은 22%였다.

중국을 낮잡아 보면서도 한편으론 위기감을 느낀다. 중국에 있는 한국 과학자 일부가 마주하는 또 다른 시선은 ‘인재유출’, ‘기술유출’로 표현되는 배신자 프레임이다. 뒤처진 중국이 한국을 맹추격하는 데 한국의 인재들이 힘을 보탠다는 인식이다. 한 과학자는 “미국에 사람 보내면 인재유출로 보지 않지만, 중국은 중국이기 때문에 인재유출이 된다. (중국에) 빼앗긴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여기(중국)가 더이상 기술을 빼내기만 하는 곳인지도 봐야 한다. 오히려 중국에서 한국으로 기술이 유출되는 걸 걱정하는 분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시’와 ‘위기감’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한 감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중국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자력으로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한 ‘딥시크 쇼크’에서 보듯이 이미 중국은 몇몇 분야에서 한국을 앞서가고 있다. 중국에서 연구하는 한국 과학자들에게 중국이 현재 어느 지점까지 나아갔는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을 직시하면 할수록 보이는 것은 한국 과학 정책의 난맥이었다.

2010년을 전후해 한국에서는 이차전지가 미래 먹거리가 되리라는 기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도 집중 육성 계획을 밝혔고, 국내 기업들도 약진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도 이차전지 산업 육성에 뛰어들었다. 구체적인 방향성은 한·중이 서로 달랐는데, 한국은 세 가지 금속원소를 혼합해 양극재로 쓰는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했다면, 중국은 양극재로 리튬인산철(LFP)을 쓰는 ‘LFP 배터리’에 집중했다. LFP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성이 있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가 삼원계 배터리보다 짧다는 단점이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였기에 용량과 주행거리가 중요했다. 때문에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이차전지 기업 상당수가 삼원계 배터리 개발에 주력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처럼 보였다. 세계 시장점유율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치고 나갔지만, 자국 배터리만 쓰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빼면 한국이 우위였다. 2022년까지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가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그런데 2023년 50% 선이 무너지고 중국 기업들과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지더니, 올해 들어 9월까지 중국의 배터리 사용량 상위 3개 회사의 합산 점유율이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을 넘어섰다.

중국의 배터리 추월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LFP 배터리의 약점으로 꼽히던 에너지 밀도를 개선했다. 규모의 차이도 빼놓을 수 없다. 커다란 중국 시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10여년간 시행착오를 겪고 개선하기를 반복해왔다. 연구개발 인력도 많다. 예컨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중국 CATL의 연구개발 인력은 2024년 기준 2만346명으로 한국 배터리 3사 평균인 3087명보다 7배 가량 많다(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중국에서 이차전지를 연구하는 김종명 상하이과학기술대학교 부교수는 “중국은 시장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원래 없던 LFP 배터리 시장을 국내 시장에서 시험하고 발전시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어냈다. 중국을 체면 차리는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와서 보면 실용적이고 실패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실험주의 경향이 강하다. 나라 자체를 실험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과학계 전반에 그런 분위기가 있다. ‘안되는 것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꾸역꾸역하다 보면 결국 된다.’ 이차전지 등에서 그런 걸 입증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앞질러 가기 시작한 분야는 이차전지만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년에 한 번씩 주요 5개국의 기술 수준을 평가한 보고서를 내놓는다. 가장 최근 보고서인 2022년 보고서에서 중국은 국가전략기술 12대 분야 중 첨단모빌리티, 우주항공·해양,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 등 7개 기술에서 한국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격차를 어떻게 좁혔을까. 규모와 체급에서 나오는 힘도 분명히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공공·민간부문을 막론하고 지난해 중국은 연구개발에 3조2327억위안(한화 약 671조원)을 투자했다. 한국으로 치면 나라 전체의 1년 예산보다 많은 돈을 연구개발에 쓴 것이다. 인력도 그렇다. 중국에서 내년도 석사연구자 지원자 수는 343만명(중국 금융데이터제공업체 동팡차이푸)으로 매년 10만명 가량이 입학하는 한국 대학원의 상황을 압도한다.

한국 과학자들이 중국으로 연구 거점을 옮긴 까닭을 들어보면 중국이 어떻게 격차를 좁혔는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좋은 조건으로 중국에 스카우트된 사례도 있었지만, 더 많은 기회를 위해 중국을 택한 이들이 더 많았다. “한국에 들어올 역량이 안돼서”, “한국에서는 자리를 잡을 수 없어서”라는 인식은 어느 정도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구자 개개인의 역량을 논하기 전에, 한국이 보장하는 자리나 기회의 절댓값이 터무니없이 작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에 있는 듀크쿤산대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는 김은유 교수는 한국에 있을 때는 한 사립대에서 연구교수로 일했다. 2017년 1년간 방문학자로 중국과학원에서 근무했고, 그 경험이 좋았기에 2019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중국과학원으로 돌아왔다. 중국과학원에서도 연구교수라는 점은 한국과 동일했다. 그런데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기회, 대우가 달랐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는 전공이 식물이다 보니 갈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다. 학교가 거의 유일했는데, 교수가 안 되면 다 실패한 박사가 되는 분위기였다. 한국에서는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사각지대에 있는 자리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학생도 있었다. 중국과학원에서도 연구교수로 있었는데 본인의 랩(연구실)도 가질 수 있고, 학생들도 존중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중국에서 눈여겨본 것은 많은 기회다. 주변 연구자들을 봐도 지원받는 연구비의 수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연구비가 아예 없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앙정부가 수행하는 국가급 연구과제를 따내지 못했다면 지방정부의 연구과제를 따낼 수 있고 신진 연구자라면 그에 걸맞는 과제를 따낼 수 있다. 지방정부들도 연구 투자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학원생들도 대부분이 장학금을 받는다. 한국의 대입 수능시험처럼 중국은 대학원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카오옌’이라는 단일한 시험을 치르고 성적순대로 대학원에 입학한다. 국가 장학금을 못 받아도 지방정부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하다못해 중국은행의 장학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 그는 “자기 수준에 맞는 지원이 있고, 기회를 다 받는다. 조금 더딘 학생들이 연구를 못 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를 받으면 더디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은 성장할 인프라가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국내에서 일자리를 잃고 중국으로 떠난 이들도 있다. 박찬 연구원은 지난해 7월부터 중국 허난과학원에서 천체물리학, 세부적으로는 중력파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국책연구기관에서 2~3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비정규 연구자로 있었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대규모 R&D 예산 삭감이 있을 것이란 소문을 듣고, 일자리를 잃을 것을 예감했다. 기관 예산이 줄면, 재계약은 불발될 게 뻔했다. 전 세계 연구기관에 지원서를 보냈다. 허난과학원에서 연락이 왔고 “파격적인 계약”으로 채용이 됐다. 박 연구원은 “돈은 한국에서 받는 정도로 받았다. 중요한 건 3년을 일하고, 성과가 좋으면 3년 더 일하게 해준다는 계약이었다. 마흔살까지 연구하면서 한 번도 그런 긴 기간의 계약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천체물리학의 이론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자다. 한국에서는 연구를 위한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과학과 기술이라는 단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과학이라면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돈이 되는 기술 위주로 투자한다. 내가 하는 분야는 분명 중요한 연구인데 투자도 적고, 한국 과학계에서 존재감도 없고 자리도 안 나왔다.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중국 중앙정부는 2024년 전체 R&D 예산의 26.4%(980억 위안·약 20조원)를 기초연구에 투자했다. 반면 한국은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기초연구 투자를 크게 늘렸음에도 그 비중은 12.7%에 그친다.

제아무리 석학이라도 기회가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석학으로 꼽히던 A교수도 정년 후 중국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년 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는 있다. 다만 조건이 붙는다. 예컨대 카이스트는 연간 3억원 이상의 외부과제를 따온 교수를 대상으로 정년 후 교수 제도를 운영한다. A교수는 “우리나라는 정년 후 사실상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해마다 얼마 이상의 계약을 따와야 하는데 내 경우는 이론을 주로 하고, 과제들도 덩치가 크지 않아서 어려웠다”고 했다. A교수는 중국에서 국내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물론 중국이 제공하는 많은 기회는 경제성장기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고, 언젠가는 연구자의 일자리가 더는 늘어나지 않는 정체기가 와 기회의 문이 닫힐 수도 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의 최대 부호로 꼽히는 생수회사 농푸산취의 중산산 회장은 올해 사재 8조원을 들여 대학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상위 기부자의 70%는 교육에 투자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는 통계도 있다. 한·중 과학자들의 기회의 차이가 단순히 규모의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제공하는 연구환경에서도 차이가 있다. 정용삼 난징농업대학 예방수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2010년대 초반에 중국에 스카우트됐다. 그 시기 중국은 본격적으로 인재를 모으기 시작했다. 중국 대학의 총장이 미국 전역의 유명 대학을 돌아다니며 채용 면접을 직접 진행했다. 처음 제의를 받고 최종 수락까지 8개월이 걸렸다. 미국에서 연구를 이어갈 생각이었기에 중국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 대학 측은 계속 계약 조건을 상향하면서 끈질기게 제의했다. 중국행을 결정하기 전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전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조건이 좋지 않았다. 연구를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는 신임 교수가 연구비를 신청하면 상위권 대학도 5000만~1억원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더 문제는 연구공간이었는데, 신임 교수가 가자마자 연구공간을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정 교수는 “내 경우에는 학교를 택할 때 바로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인지가 중요했다. 하고 싶었던 연구가 많았던 때인데 한국에 간다면 바로 구현할 수가 없었다. 5000만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다. 중국에서는 초기 연구자금만 5억원 정도를 받았고, 연구공간도 바로 받았다. 물론 그런 대우가 중국에서도 당연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김종명 교수도 “한국으로 들어간 연구자들이 초반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풍족하게 시작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성과를 쌓고 잘 하는 분들은 풍족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굉장한 경쟁을 뚫고 가야 한다.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재가 과밀하게 많다”고 했다. 인재에 비해 기회가 과도하게 부족하다는 취지다.

김은유 교수도 2017년 중국과학원에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단 1년 만에 연구환경의 차이를 체감했다. 김 교수는 가뭄, 홍수 등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작물을 개발하는 연구를 한다. 그런데 방문학자로 중국에 와 있는 1년 동안, 한국에서는 4~5년간 구상만 하고 손도 못 대던 연구가 진행되는 경험을 했다. 예컨대 토마토 연구를 한다면 한국에서는 연구 인력들이 본격적인 연구 전에 토마토의 형질 변환체를 만드는 몇 개월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1세대만 길러 씨를 받아달라’고 주문하면 이를 대행하는 회사가 여러 곳 존재한다. 창의적인 연구의 디자인은 연구진이 하고, 손이 가는 일은 회사에 맡길 수 있는 셈이다. ‘식물’이 들어가면 일종의 농업으로 분류해 박한 지원을 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농업을 핵심 기반사업으로 보고 더 많은 지원을 했다.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의 장점으로 꼽는 이들도 많았다. 박찬 연구원은 “한국은 내 연구만 해서는 연구소에 계속 붙어있을 수가 없다. 연구소도 기본 미션이 있으니 그걸 하면서 제 연구를 따로 해야 했는데 그게 힘든 과정이었다. 여기선 그런 게 없다”고 했다. 김은유 교수도 “한국에서는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부터 연구 제안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고, LMO(유전자변형생물체)를 수입하면 수입 신고를 하고, 특허를 관리하는 일까지 내가 했다. 연구 이외의 업무가 많았다. 중국은 연구실마다 매니저 시스템이 잘 돼 있다. 여기선 매니저들이 행정 업무를 맡아주니까 업무부담이 훨씬 줄었다”고 했다.

물리적인 환경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LFP 배터리 사례에서 본 것처럼 중국 과학계는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선 굵은 면모가 있다고 한다. 김우재 교수는 하얼빈공업대학 생명과학센터에서 행동유전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다. 캐나다에서 연구를 하다 2021년 중국으로 옮겼다. 그 무렵, 한국행도 선택지 중 하나였다. 당시 김우재 교수는 꿀벌로 유전학을 연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초파리를 대상으로 진행된 유전학 연구는 많지만 꿀벌은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분야였다. “성공하면 꿀벌의 유전자 개량도 가능한데, 실패하면 연구자 경력이 날아갈 수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연구였다고 한다.

한국에 접촉했을 때도 이런 구상을 넌지시 내비쳤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국에서는 못하겠다”는 얘기였다. 채용을 전제로 한 중국 측과의 미팅에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김 교수는 “얘기를 듣던 연구소장이 눈이 이만큼 커지면서 자기들은 ‘스케일 큰 연구 좋아한다. 왜 안 되느냐. 크게 하자’고 했다. 캐나다에서 얘기했어도 안 들어줬을 텐데. 중국이 제일 싫어하는 게 스케일이 작은 연구들이다. 교수직을 유지하려고 하는 연구들, 연구를 위한 연구들. 여기는 꼭 실용적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스케일이 크고, 꿈이 큰 걸 오히려 좋아한다”고 했다.

중국에 있는 한국 과학자들이 공통으로 꼽는 한·중 간의 차이는 문화나 인식과도 관련 있다. 중국에서 과학자는 대우가 좋은 직업일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이선영 베이징이공대 기술경제·전략경영학과 교수는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의 집은 이미 중국 부모들의 성지가 됐다. 우리 아이도 저런 인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량원펑 생가를 찾는다. 공학해서 기술 엔지니어가 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사회적인 대우도 받는다. 과학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 지금 있는 학교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들어오는 학부제인데 과학 전공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고 했다.

중국 곳곳에서 ‘과학기술이 흥해야, 민족이 흥한다’고 적힌 공산당의 선전 문구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박찬 연구원은 “이곳 도시근로자 평균 임금이 월 50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내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중국 평균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과학자를 부를 때 집 가(家)자를 써서 과학가라고 부른다. 어떤 분야를 집대성한 사람을 대가라고 하지 않나. 그런 존경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반고를 나와 카이스트에 진학했다. 당시 카이스트는 한 학년에 600명을 뽑았는데, 이중 일반고 출신은 60명 가량이었다. 그는 “주로 일반고 출신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그 60명 중에 지금도 연구를 하는 친구는 1~2명이다. 주변에서 하는 ‘의대 가라’는 얘기 듣지 않고 카이스트에 들어온 친구들인데, 대학 입학 후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많이 유출됐다. 주변 친구 대부분이 변호사, 의사, 변리사 등 라이센스 가진 전문직이다”라고 했다.

제도에도 과학자에 대한 존중이 반영돼 있다. 중국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과학자에게 ‘원사’라는 최고위 학술 직함을 부여한다. 명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 정책이나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데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학교나 연구기관 평가에서도 원사를 얼마나 보유했는지가 주요한 기준이 된다. 정용삼 교수는 “한국에도 원로 학자들의 모임인 한림원이 있지만, 중국의 원사는 그것과도 또 다른 느낌이다. 원사가 되면 그분이 하는 연구영역을 누구도 건드릴 수가 없다. 존재만으로 학교와 연구원 위상에 이바지하다 보니 원사가 되면 연구공간으로 건물 하나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도 최근 중국의 원사를 벤치마킹해 매년 20명씩 5년간 100명의 ‘국가과학자’를 선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국가과학자에게는 연간 1억원의 연구활동비가 지원된다. 그러나 지원 규모나 영향력의 측면에서 원사 제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미·중 기술경쟁의 한복판에 있어서인지 과학기술계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높다. 김우재 교수는 “중국의 과학기술인 전반이 들떠 있는 분위기가 있다. 중국 위챗(한국의 카카오톡처럼 일상적으로 쓰이는 채팅 앱)의 뉴스피드를 보면 과학기술계 소식을 다루는 피드가 엄청 많다. 중국 과학자가 ‘네이처’나 ‘사이언스’처럼 유수의 학술지에 게재하면 위챗 페이지가 그 사람 기사로 도배되고, 1000개 넘는 댓글이 달린다”고 했다.

이들에게 한국의 과학정책에 주문하고 싶은 바를 물었을 때 공통으로 돌아온 답변은 ‘일관성’이었다. 한국의 과학정책은 정권마다 핵심 의제가 달라지는 양상을 보였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였고, 문재인 정부 때는 ‘4차 산업혁명’이었으며,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AI’가 핵심 주제가 됐다. 문제는 관심사가 달라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책의 연속성이 단절된다는 데 있다. A교수는 “일본은 꾸준하게 지원을 한다. 중국은 지도체계가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 너무 단기적이다. 재원이 넉넉치 않은 나라 사정이 있겠지만 뭐가 뜬다고 하면 대부분의 재원이 거기로 투입된다. 사회도 과학도 기초가 중요한데 묵직하게 나아가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많은 기회, 좋은 연구환경과 대우, 정책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국의 과학기술은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여러 분야를 일직선에 놓고 추격과 추월을 구분하는 것이 이제는 의미 없는 일이 됐는지도 모른다. “미·중 경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은 확실히 못 이길 것 같다”, “중국은 인해전술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몇 분야를 빼고는 뒤집힐 것”, “중국의 발달 속도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과학자들의 판단은 한결 같았다. 과연 한국은 ‘무시’와 ‘위기감’이라는 틀로 앞으로의 중국을 이해할 수 있을까. 혐오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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