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의 일일극이 달라졌다. 이는 출연한 배우들의 입에서부터 나왔다. 늘 안온한 대가족을 배경으로 갈등과 시련이 있지만, 화목한 행복으로 닫히던 결말이 주된 클리셰(뻔한 설정)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 명의 ‘아빠’가 등장하고, ‘정자’ 이야기가 밥 먹듯 나온다. 배우들도 “이게 KBS에서 방송될 수 있는 드라마인가”라는 표현이 나온다.
같은 일일극이지만 KBS1과 KBS2의 전략은 예전부터 달랐다. KBS2의 일일극은 주로 복수와 치정으로 얼룩졌다. 최근에 방송된 ‘여왕의 집’을 상기시키기만 해도, 10살이 되지 않은 아이가 사고로 사망하고 심지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고자극의 설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KBS1은 조금 다르다. ‘뉴스9’가 바로 뒤에 있어서인지 가족 간의 사랑을 중시하는 점잖은 드라마가 많았다.

하지만 13일부터 시작하는 새 일일극 ‘마리와 별난 아빠들’은 다른 결을 갖고 있다. 철없는 엄마의 어린 시절 소망 때문에 누가 아빠인지 불분명하게 된 주인공 앞에 자신의 생물학적인 아빠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세 명 등장하고, ‘정자은행’ ‘정자기증’ 등 정자와 관련한 대사가 쏟아져나왔다. 과연 이런 주제와 대사가 KBS1 일일극에서 가능한 것인지 배우들도 의아해했다.
결국 ‘마리와 별난 아빠들’은 일일극 경쟁에서도 KBS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자세를 취하게 됐다는 예보와 같은 작품이 됐다. 13일 온라인 사전 녹화 형식으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서용수 감독을 비롯한 극의 주역들은 KBS 드라마의 변화를 조금씩 증언하기 시작했다.

‘마리와 별난 아빠들’은 주인공 강마리(하승리)가 세 명의 아빠 사이에서 혼란을 겪다 갖은 소동과 시련 끝에 아빠를 찾고, 그보다 더 진한 가족애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서용수 감독을 비롯해 배우 하승리, 현우, 박은혜, 금보라를 비롯해 강신일, 류진, 황동주, 공정환 등이 참석했다.
서 감독은 “연출의 포인트는 ‘재미’다. 책임감이 있고, 일일극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부담감이 있지만 재미있게 일상의 에피소드를 공감이 갈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극 중 마리의 엄마 주시라 역 박은혜는 이에 “다른 감독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서 감독님에게는 KBS답지 않은 잘생기고 깔끔한 느낌이 있다. 대본을 봤을 때도 ‘이게 KBS 드라마가 맞아?’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KBS가 이런 걸 다뤄도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병원장 엄기분 역을 연기하는 배우 정애리는 “이런 이야기를 KBS에서 할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자 이야기가 엄청 많다. ‘정자 지옥’에 갇힐 정도로 많은 대사가 나오고, 처음에는 걸려서 여러 번 다시 발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도 이 작품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소재와 대사는 파격적으로 바뀌었지만, KBS의 일일극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서 감독은 “‘출생의 비밀’이라고 하면 클리셰나 구태의연한 설정을 생각하시는데, 이 드라마에서 따지자면 출생의 비밀은 10개는 된다”며 “이 같은 설정이 중점적인 것이 아니라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가족의 형태가 정답이냐는 이야기보다는 이런 형태는 이렇게 살고, 저런 형태는 저렇게 산다는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아빠를 찾는 출생의 비밀과 정자공여, 정자은행 등의 소재가 KBS1의 일일극에 나올 정도로 시대는 변했다. 연출자 역시 40대의 젊은 감독을 택했을 정도로 변화의 의지를 불태웠다. 과연 KBS의 새로운 시도는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될지, 작품은 13일부터 매주 월~목요일 오후 8시30분 KBS1에서 방송된다.